"순흥에 사람 사라지고 피가 20리 흘러" 수많은 義士 기린 '금성
영주 소수서원 인근 순흥면 내죽리에 위치한 금성단(錦城壇)은 현정(顯正)의 제단(祭壇)에 순혈(純血)을 바친 충의(忠義)의 고을 순흥의 상징물이다. 이곳은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하다가 최후를 마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그리고 수많은 의사(義士)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의 보위를 빼앗자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금성대군(수양대군의 아우)은 순흥으로 귀양을 왔고, 마침 단종에게 동정적이던 집현전 출신 부사 이보흠과 의기가 투합해 복위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는 순흥의 사대부들과 이민(吏民)들의 호응 속에 영주를 접수하고 안동으로 진출해 2천~3천 명의 군사를 동원하는 작전으로, 영남 일대에 격문을 돌려 지지자들을 더 규합해 서울로 진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격문을 훔쳐낸 한 관노(官奴)의 고자질로 의거(義擧)는 사전에 발각되고 금성대군과 부사 이보흠 등 거사의 주역들은 물론 수백 명의 사민(士民)들까지 송두리째 도륙을 당하면서 고을 전체가 온통 피바다를 이루었다.
순흥의 삼십리 안에는 사람 그림자가 사라지고 희생자들의 피가 죽계(竹溪)를 메워 이십리 하류에 이르렀다는데, 지금도 '피끝'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을 정도이다. 이 참사로 순흥은 고을 이름조차 빼앗겼다가 숙종 때에 와서야 순흥부(府)가 회복되었으며, 금성단은 260년 만에야 세울 수 있었다.
조향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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