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말 많은 시대, 주공(周公)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입력 2011-06-21 07:14:51

개인문제로 글을 시작해서 쑥스럽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은 편입니다. 지인들이 더러 "너는 말만 좀 줄이면 훨씬 더 좋을텐데"라고 핀잔을 줄 정도입니다. 막상 제가 없으면 분위기가 썰렁하다고 사족을 달기는 합니다만.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줄에 들어섰는데도 말 많음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삶은 유쾌해야 한다'는 제 엉터리 철학과 고집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와 재산, 직업 등 여러모로 제 처지를 감안하면 지금 큰 꿈은 무리겠지만, 인생 목표도 낮춰 잡다보니 출세할 일도 없고 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저의 생활 신조는'뜻있게 살자','열심히 살자','즐겁게 살자'즉,'뜻열즐'입니다. 가끔 기도문처럼 되뇝니다. 이 소중한 인생 좌표가 국민생활운동으로 승화되기는 어려워도, 남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하루하루 삶 속에 행복과 천국이 있다는 신념 아래, 제가 세운 "산이 있어 좋다, 책이 있어 좋다, 내가 있어 좋다"는 삼락(三樂)을 생각하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이는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절세비법(絶世秘法)이며, 자위수단(自慰手段)이 아닐까요.

동병상련으로 저에게 반가운 분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 때 정승까지 지낸 문신 김상용은 "말하면 잡류(雜類)라 하고, 말 아니하면 어리다네. 빈한(貧寒)을 남이 웃고, 부귀(富貴)를 새오나니.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살 일이 어려워라"라며 한탄시를 썼습니다.

입 자물쇠가 부실한 저를 자책하면서, 과연 동서고금에 지도자들은 다변, 웅변, 눌변, 과묵 등에서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대충 훑어보니 정답은 없으며, 결국 내공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사회는 저변에 아직도 공자의 유교문화가 흐르고 있습니다. 공자는"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고 했고, 중용에도 "지혜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동양에 펄럭이는'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란 깃발에서도 볼 수 있듯이'무거운 입'은 남자의 최고 덕목입니다. 누가 감히 반기를 들겠습니까. 저는 유교문화와 공자의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아닌가요.

공자는 평소 어눌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에~또, 에~또" 이런 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최대 전자회사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도 말할 때 보면, 느릿느릿 눌변이어서 듣는 이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국회의원은 원칙공주, 침묵공주, 은둔공주, 얼음공주 등 별칭에서 보듯,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호사가 입방아에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인이 정통으로 삼는 첫 통일중국 한나라 제국 창업자 유방은 다릅니다. 중국 최고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는 "유방이 매일 집안에 파묻혀 놀고 먹기를 즐겼으며, 호언장담을 하기 일쑤였고, 술과 여자를 매우 밝혔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 예로, 그가 하급관청에 일할 때, 실력자가 하객 진상품을 접수하면서 "진상품이 1천전(錢) 미만인 사람은 말석 쪽으로 앉으라"고 말하자 그는 한 푼 없는데도 명함에'축의 1만전'이라고 써내며 상좌에 태연히 앉았다고 합니다. 장대한 중국사에 큰 인물로 추앙받는 유방이 호언장담을 일삼는 건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범부(凡夫)인 제 말 한마디는 세상에 추호의 여파도 없지만,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자칫 나라를 크게 요동치게 합니다.

얼마 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대학생 등록금 반값으로 했으면 한다"고 말해, 촛불집회의 불씨를 제공했습니다. 약속이 지켜지길 바랍니다. 재산 58억원의 오세훈 서울시장은 "딸 두 녀석 모두 대학 다닐 때는 정말 허리가 휘는 줄 알았습니다"고 말해, 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치인에게는 "말하다는 거짓말하다와 동의어"라는 얘기도 있는데, 함부로 말하는 정치인보다 제 수다가 나은 것 같기도 해 다행스럽습니다.

중국 건안문학을 일으킨 학자이기도 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는 글에서 "주공은 입안에 있는 것을 뱉어 천하가 하나로 돌아가게 했도다"고 주공을 칭송했습니다.

말로 세상이 좋아지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는데, 주공 같은 인물의 출현이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이헌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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