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외로운 시골. 농촌인구의 감소와 함께 아이들이 떠나버린 학교는 쓸쓸하다. 깨진 유리창에 잡초만 우거진 운동장은 동네 주민들조차 피해가고픈 우범지대로 전락할 정도다. 폐교된 학교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옛날의 활기차고 싱그럽던 날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일부 폐교는 산뜻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폐교의 변신은 무한하다.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숙소로, 아이들이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으로,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온 것. 새롭게 단장한 폐교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공간이 아니다.
◆폐교를 활용한 숙박시설
1999년 폐교된 경북 칠곡군 석적읍 망정초등학교. 이곳은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블루닷'(Blue Dot)이라는 이름의 예쁜 연수원 겸 게스트하우스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18인실과 20인실 등의 큰 객실과 강의실을 갖추고 있어 기업체의 연수원으로도 이용 가능하고, 2인실, 4인실의 작은 방과 레스토랑, 카페 등이 마련돼 있어 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문화공간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상시적으로 전시회가 열리며, 다실에서는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일본 녹차와 보이차 강의도 진행되고 있다. 또 운동장 둘레는 꽃과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어 예쁜 정원으로 탈바꿈시켰고, 운동장 트랙이었던 공간에는 잔디를 심어 축구 등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폐교를 활용한 공간이다 보니 리모델링에 한계도 있었겠지만, 어느 작은 공간하나 허투로 남겨두지 않았다. 예전 교사들의 사택으로 활용되던 작은 숙소는 직원들의 사무실로 활용하고, 한쪽 창고 공간은 찜질방으로 바꿨다.
당초 이곳은 2004년 한 중소기업체의 연수원으로 문을 열었다가 지난해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정한구 총지배인은 "정원이 워낙 예쁘다 보니 호텔이나 펜션쯤으로 오해하고 숙박을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 고심끝에 일반인들을 맞기로 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름도 '블루닷'으로 바꿨다. 과거의 '양지연수원'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생각에 고심해서 바꾼 이름이 블루닷이다. 정 지배인은 "'푸른 점'이란 뜻이지만 지구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며, 하나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다"며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편히 쉬면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휴식'문화공간으로 다가서고 싶었다"고 했다.
폐교가 산뜻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인근 주민들도 반기고 있다. 5년 동안 폐교로 방치되면서 유리창 하나 성한 게 없고 부랑자들이 드나드는 우범지대였지만 이제는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몰리면서 적막했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 정 지배인은 "주민 공동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체험, 문화시설로
폐교를 활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본래 '교육장'의 기능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조금만 손보면 체험학습 공간 등 다양한 학습시설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올 4월 2010년 폐교된 경주시 탑통의 오릉초등학교를 유아들을 대상으로 직접 만지고 느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유치원별로 신청을 해서 요리체험인 '우리는 요리왕', 노래교실인 '펀펀 노래방', 멋진 옷을 입어 보는 '나도야 스타',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보는 '빨리 낫는 병원' 등 다양한 놀이와 교육을 병행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 원어민과 함께하는 '신나는 놀이체험'과 농촌을 느낄 수 있는 '농사일 체험' 등 도시와 농촌의 모습을 공감할 수 있는 특색있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폐교됐던 영천시 녹전동의 옛 영북초등학교는 2008년 10월 영천시와 영천교육지원청에 의해 '영천영어타운'으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민국과 호텔'약국'은행'우체국'식당'백화점'다목적실 등 11개 체험부스가 설치돼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영어를 일상생활의 체험이나 놀이를 통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 매년 5천 명 이상의 학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은 비결에는 영천시가 매년 4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이 낮다는 장점에 있다.
그 외에도 경북 경주시 아화면 아화초교 천촌분교는 폐교된 이후 '주말 놀자 학교'로 변신해 아이들이 농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1994년 문을 닫은 영덕군 창수면 창수초교 미곡분교는 경북 학생야영장으로 거듭났다. 또 구미시 대방초교도 도자기, 한지, 목공예의 멋을 느끼는 체험학교로 자리 잡았고, 칠곡군 기산면 옛 기산초교는 2001년부터 두부'떡만들기'도예 등 16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칠곡예술문화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사례도 흔하다. 영천 화산면의 시안미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1999년 폐교된 화산초교의 가상분교를 2004년 개조해 2층짜리 학교 건물을 3층 건물로 증축해 4개의 전시실과 레스토랑을 만들고, 운동장은 잔디 조각공원으로 꾸몄다.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보니 봄'가을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대구미술광장'은 2000년 대구시와 대구미술협회가 문화관광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폐교된 용계초교 정대분교를 개조해 미술관을 겸한 화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스페이스 가창'은 대구현대미술가협회에서 2007년 폐교된 가창초교 우록분교를 새로 꾸며 창작스튜디오와 갤러리로 사용중이다.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야
폐교는 잘 활용하면 농촌체험마을이나 생활체육, 문화복지 공간으로 거듭나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폐교를 매각할 때는 비용만 지불한다고 누구나 사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 정한 활용 용도에 부합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폐교 재산 활용 촉진에 관한 특별법은 건전한 용도의 폐교 활용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닷 정 지배인은 "2004년 폐교를 매입할 당시 이곳에 눈독 들이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용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여러 경쟁자들을 제치고 인수할 수 있었다"며 "주민들과의 위화감 조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보니 교육청에서는 연수원이나 체험시설 등 목적으로 사용하길 원한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남아 있는 폐교를 임대 등으로 활용하려면 시'군 교육지원청과 협의하면 된다. 경상북도교육청 홈페이지(http://www.gbe.kr) 맨 하단 '교육행정' 메뉴창에 '폐교활용안내'를 보면 임대와 매각공고는 물론이고 활용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매각'임대에만 급급해 사후관리에 손을 놓는 경우도 상당수다. 매각'임대된 폐교가 지역과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교육재정 확보나 외지인들의 사업 수단이 되는 경우가 흔한 것. 이 때문에 폐교 활용의 기본 전제는 '지역과 주민'이 우선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교육청과 손잡고 폐교 활용을 위한 주민 참여 및 지역 콘텐츠 개발을 고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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