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노래방… 노래는 없고 창문 너머 희미한 '몸짓'만…

입력 2011-06-18 08:00:00

퇴폐의 온상이 되고 있는 노래방에서는 별별 백태가 다 펼쳐진다. 노래방 문화가 끝모르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퇴폐의 온상이 되고 있는 노래방에서는 별별 백태가 다 펼쳐진다. 노래방 문화가 끝모르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건전한 노래방이 퇴폐영업 노래방으로, 그 안에서 별별 백태들이 펼쳐지고'.

대한민국 방문화의 결정판, 노래방이 하나의 놀이문화이자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20여 년 전, 노래방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오붓한 방에서 가무(歌舞)를 즐기는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 공간으로 긍정적인 역할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런 긍정적 역할을 하는 노래방을 찾는 것이 힘들어졌다. 우리 동네 옆 노래방까지 가족과 함께 가기에는 민망하거나 당혹스러운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이에 더해 노래방 도우미들이 전하는 갖가지 에피소드는 상상을 초월한다. 용돈을 벌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로 나섰다 초등학교 동창생이나 은사를 만나는 것은 예사며, 심지어 직계 가족(아버지'남동생 등)을 만나 집안에 평지풍파를 몰고 오는 사례도 적잖았다. 심한 경우,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들과 마주쳤을 때는 사정이 불리한 쪽에서 입막음 대가로 소정의 사례(돈)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래방,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 세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요즘 노래방(노래방식주점) 백태를 살짝 들여다봤다.

#1. 우리 동네까지 퇴폐 노래방

대구 중구 도심가의 한 노래방. 회사원 이모(42) 씨는 회사 여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뒤, 노래방을 찾았다. 하지만 바뀐 분위기에 적응을 하기 힘들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노래방 도우미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으며, 각 방마다 여성 도우미를 찾지 않는 곳이 없었다. 개운치 못한 표정의 여직원이 있어 주변의 다른 노래방을 찾았으나, 다른 곳 역시 비슷한 분위기라 그냥 소주 한잔 더하고 헤어져야 했다. 이 씨는 "프랜차이즈 형식의 몇몇 노래방을 제외하면 노래만 부르는 곳을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준(가명'45'대구시 북구 침산동) 씨는 동네 인근에 노래방이 있어 두 딸과 함께 들렀다 못 볼 광경을 딸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다른 방 유리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야한 여성의 몸짓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김 씨는 두 딸을 데리고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참 씁쓸합니다.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데 누굴 탓하겠습니다. 방법이 없죠. 집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야죠."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2. 멤버십 노래방까지 등장

대구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달구벌대로에 위치한 한 노래방의 경우. 단골 고객은 '멤버십'으로 보호하며, 예약 전화를 한 후에야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확실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한 명당 10만~15만원의 비용이 든다.

양주 2병에 기본 안주가 들어오고, 이후엔 도우미가 등장해 2시간가량 퇴폐행위를 벌인다. 분위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에는 현장에서 또 다른 퇴폐를 유혹하는 제안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하면 10만원에 성매매가 노래방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곳 외에도 수성구의 독특한 이름의 노래방 역시 서울 북창동식 노래방으로 유명하다. 3, 4명이 올 경우 50만~60만 원을 주면 양주 1병, 맥주 10병에 기본 안주가 들어오고, 여성 도우미들이 화끈한 쇼로 손님들을 모신다. 이곳 역시 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성매매 유혹이 이어진다.

이 노래방을 가끔 이용한다는 황지훈(가명'36'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씨는 "가끔 멀리서 친한 친구들이 오거나,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을 접대해야 할 때, 이런 멤버십 퇴폐 노래방을 찾는데 룸살롱보다는 가격이 저렴하고 2시간 동안 화끈하게 놀 수 있다."고 말했다.

#3. 노래방 도우미들 요지경

대구 중구의 한 노래방. 이 노래방에서 3명의 여성 도우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바탕 유흥이 지나가고, 술을 한잔 기울이며 도우미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었다. 30분가량 이어진 대화에서 이 여성들은 서로 재미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려 '배틀'을 하듯 온갖 얘기들을 들려줬다.

2, 3년 정도 노래방 도우미 경력이 있는 이들은 난감한 경우를 1년에 1번 정도는 경험한다고 했다. 한 여성 도우미는 한 달 전 남동생을 만난 사실을 털어놨다. 웃지 못할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 여성은 "7명이 함께 한 방에 들어갔는데 제가 마지막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동생을 알아볼 수 있었다"며 "잽싸게 그 자리를 피했는데 집에 가니 동생이 능청스럽게 '어제 노래방에서 누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봤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얘기가 끝나자마자 또 한 여성은 1년 전 삼촌을 만난 얘기를 전했다. 대략 이랬다. 그는 "노래방 도우미를 할 때는 화장을 진하게 하고, 완전 변신을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상대가 먼저 나를 알아보기 힘들다"며 "항상 조심하는데 그날은 3명의 남자가 노래를 하던 중에 친구를 불렀는데 그 사람이 삼촌이라 피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질세라 가만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여성 도우미는 "나는 친구의 권유로 노래방 아르바이트 도우미를 했는데 회사 동료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 걸려서 그 자리에서 머리채를 잡혀 집으로 끌려가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집안 분위기가 거의 쑥대밭이 됐다"고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세 여성은 자기 친구들이나 함께 일하던 여성 도우미들의 사례라며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별별 백태들을 들려줬다.

#4. 도우미 공급처, 보도방

요즘은 노래방에 도우미들을 공급하는 속칭 '보도방'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갈수록 대형화 추세에 있으며, 다양한 업종에 도우미들을 보내고 있다. 큰 보도방은 하루에만 해도 여성 도우미들을 200~300명까지 공급할 정도로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 보도방은 10여 명의 남성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락책, 공급책, 운반책까지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래서 연락이 오면 늦어도 30분 이내 여성 도우미들을 승합차에 태워 노래방이나 주점까지 일사천리로 보낸다.

보도방 영업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한 업주는 "요즘은 역할의 구분이 없어져 한 여성이 노래방에도 가고, 주점이나 룸살롱뿐 아니라 출장 안마까지 하는 추세"라며 "여대생들도 명품을 사거나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는 경우도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래방 감시활동에 나선 '불법영업추방범국민운동본부'(불추본)는 해마다 전국의 노래방을 무작위로 선정, 확인한 결과 거의 100% 가까이 술과 노래방 도우미가 제공됐다고 밝혔다. 노래방의 경우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4만여 개로 급증했다. 그 배경에는 처벌규정이 완화되면서 술과 노래방 도우미를 두는 불법영업이 상례화돼 수입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불추본'의 분석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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