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운전면허

입력 2011-06-14 10:46:59

지난해 5월 69세 할머니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것이 전국적인 화제가 됐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960번의 도전 끝에 면허증을 땄다는 인간 승리가 국민을 감동시켰다. 할머니는 필기시험에서만 949번 떨어졌고 실기시험도 10번을 넘게 치른 뒤에야 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동안 들인 인지대만 500만 원이 넘고 시험장과 운전학원을 오가는 버스비와 식비 등을 합치면 들어간 돈이 2천만 원은 넘을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계산이었다.

1998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 김수환 추기경은 "운전면허증을 따서 삼천리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고 말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만큼 운전면허 시험은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과거에는 시험도 꽤 어려웠다. 우선 필기시험에서 절반이 탈락한다. 회사에서 단체로 필기시험을 보러 가면 떨어진 사람이 붙은 사람에게 술을 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회사에 돌아가서 누구누구가 필기시험에 떨어졌다는 발설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필기 재수'는 그만큼 본인에게 불명예였다. 그리고는 S코스, T코스로 이어지는 단거리 시험이다. 여기를 통과하고 장거리 시험에 합격해야 면허증을 쥐게 된다. 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S코스 후진에서 상당수가 탈락,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러니 운전학원도 덩달아 성업이었다.

이제 운전면허시험 간소화로 이런 풍경은 보기 어렵게 됐다. 기능 시험이 차량 조작과 안전 의식 등을 시험하는 50m 주행으로 대체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합격률이 93%에 달했으니 응시생들은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었다며 기뻐했다. 미숙한 운전자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운전은 기계 조작 능력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운전은 매너다. 도로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은 에티켓 없는 운전 습관과 마주칠 때다. 분명 양보 운전은 운전의 기본인데도 그런 운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자기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마구 울려대는 클랙슨, 길 모서리 얌체 주차, 깜빡이 없이 끼어들기, 그리고 무심코 내뱉는 기분 나쁜 한마디. 이것이 우리네 도로 문화의 현주소다. 운전 기능보다 소양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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