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경북도청 '후적지'의 운명

입력 2011-06-10 11:01:29

1999년에 대구미술관 건립을 위한 추진 계획이 수립되어 올해 5월에 마침내 시립미술관이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문을 열었다. 이미 8회째 광주비엔날레를 열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이 1992년에 개관한 것에 비해 늦었지만, 대구미술관의 개관에 대해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모네에서 워홀까지'를 감상할 겸 대전으로 가서 친구에게 이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했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광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전보다 늦다니." 알아보니 대전미술관은 1998년에 문을 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목하 미술관, 과학관, 박물관의 건립에 꽂혀 있다.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보다 더 큰 규모로 국립과천과학관이 수도권에 들어섰고 대구, 광주, 부산에 국립과학관이 현재 건축 중에 있다. 박물관의 경우에도 기존의 역사박물관과 다른 유형으로 부산의 국립해양자연사박물관, 목포의 자연사박물관, 울산 암각화박물관, 고성 공룡박물관 등이 지역사회의 새로운 박물관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제조업의 시대는 가고 21세기 문화관광산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제조업이 창출하는 고용 효과와 부가가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음은 이미 검증되었다. 한국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에서, 대구경북과 같은 지역에서 제조업의 성장은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첨단' 산업으로 갈수록 지역 주민들의 손에 잡히는 경제보다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이 될 게 뻔하다.

만일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연간 수익률이 대구 전체의 제조업 수익률보다도 높다면, 또한 베를린 식물원과 파리 식물원의 연간 수익률이 한국 제약산업 전체의 수익률보다도 높다면, 그래도 대구경북은 문화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할 것인가. 2009년 8월 어느 날 베를린 식물원이 무려 1억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는 상황을 눈앞에서 본 순간, 허울 좋은 '천년고도' 경주의 관광산업과 같은 방식에 안주하는 한국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임을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5월 말까지 전시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은 한창 자라나는 10대 청소년들의 상상력 함양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전시가 한 번 더 대구박물관에서 열린다면, 같은 기간에 대구과학관과 대구미술관도 이 주제에 걸맞은 특별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자. 이 기간에 대구박물관-대구미술관-대구과학관을 연결하는 '대구문화관광 셔틀버스'를 운영하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간에 대구만의 독특한 축제 문화를 열어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관광객들이 대구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자. 또 이 세 기관을 융합할 수 있는 적절한 주제를 찾아서 인문학과 문화예술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들을 대구와 경주로 초빙하자. '대구의 날'을 이 기간에 선포할 수도 있으리라.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이 개별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구와 같이 문화관광산업이 일천한 지역사회에서는 세 문화기관을 융합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개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개별 문화기관만의 문화 콘텐츠로는 대구가 동아시아는커녕 국내의 문화관광 수요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이 세 기관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이 대구에 없는 것일까.

경북도청을 이전하고 난 후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으며 공청회도 열릴 것이다. 이미 뮤지컬 전용극장, 국립도서관 분관, 인류학박물관 등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도청 후적지를 어떤 기준에 의해 결정할 것인가이다. 대구가 '글로벌 시티'로 도약하려면 미술관-과학관-박물관의 시너지 효과를 가장 극대화하는 데 가장 절실한 것,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문화관광산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자연사박물관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이 자리에 설립하면 좋겠지만, 중앙정부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자연사박물관의 설립을 포기할 것인가. 대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용이 되지 못해 승천하지 못하리라.

이종찬(아주대 교수·문화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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