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흰 코끼리에게 돌 던지기

입력 2011-06-09 10:51:53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국회와 검찰이 서로 치고받고 있다. 정치권은 "중수부가 지난 30년간 권력에 휘둘려 제 역할은 못하면서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며 폐지를 다그치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나 수뢰 등으로 늘 검찰의 칼끝에 떨었던 정치권이 이번에는 칼자루를 쥐고 끝장을 볼 태세다. 1981년 중수부 출범 이후 검찰이 거악(巨惡) 수사를 내세워 요란을 떨었지만 번번이 정치권력의 외풍에 밀려 난맥상만 드러냈다는 점을 명분으로 여론과 검찰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 일부 언론의 공세는 더 거세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검찰청법을 고쳐 중수부를 강제로라도 없애자며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중수부가 살아있는 권력에는 손도 못 대다 정권이 바뀌면 표적 수사나 하며 흠집 내기에 동원되는 등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해왔으니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마디로 '흰 코끼리' 같은 존재라는 소리다. 이는 비용에 비해 별 쓸모가 없는 것을 이를 때 쓰는 용어다. 수백 명의 유능한 검사들의 집합체인 중수부 조직상 외부에 그리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이에 검찰은 "중수부가 폐지되면 정치인'고위 공직자 비리나 재벌의 난행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별수사청 신설이나 지검 특수부가 대신 수사하면 된다는 정치권의 논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하필이면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한창인 이때 중수부 폐지를 서두르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중수부 폐지로 득 보는 쪽이 누구겠느냐며 여론에 은근히 기대는 눈치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신중' 훈수를 두고 김황식 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행정부 조직의 문제는 행정부에 맡겨달라고 주문하고 있으나 국회가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그런데 1년 넘게 사법개혁특위를 가동하면서 검찰 개혁 카드로 중수부 폐지를 도마 위에 올렸지만 국회 내부에서도 폐지를 놓고 오락가락했다. 특히 사회정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고위 공직자와 재벌 등 사회 지도층의 비리를 제대로 파고들 만한 대안이 마땅찮아서다. 더욱이 검찰 개혁에는 동의하지만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긴가민가하는 여론과 정치권의 온도 차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조선시대 법전인 '육전'에 '한 법을 세우면 한 폐단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법의 틀에 묶여 한쪽을 지키다 보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모든 일이 법대로 되지 않듯 입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 정신과 운용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법 규정을 지키되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지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중수부 폐지 논란도 마찬가지다. 권력층 사정(司正)을 전담하는 중수부를 폐지하고 또 다른 기구를 신설하거나 일선 검찰에 일을 맡긴다 하더라도 정치권력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속된 말로 말짱 도루묵이다.

중수부가 과거 잘못된 처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중수부의 수사권 독립이 문제라면 폐지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권력도 수사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을 만들 일이다. 책임지지도 못하는 법만 또 덜렁 만들어 놓고 수사 좀 할라치면 오만 군데 줄 대 검찰을 흔들고 힘 빼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그 어떤 유능한 '엄친아'가 나와도 어찌 해볼 재간이 있겠나. 국민들이 중수부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치권력 눈치나 보며 허술한 수사로 스스로 위상을 깎아내리는 검찰도 국민이 용납할 수 없지만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제 허물을 슬쩍 덮으려는 정치권의 '방탄(防彈)법'도 이제는 사절(謝絶)이다. 지난 1년 동안 사개특위가 사법 개혁을 위해 고심한 부분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막상 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납득하고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문제는 법이 아니라 시스템을 완벽하게 굴려가고자 하는 정신과 의식이다.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특별수사청 아니라 그 할아비가 나와도 소용없다. 중수부 문제는 법과 사람이 따로 논다면 그 어떤 해답도 정답이 아니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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