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폐 국균종 언니 돌보는 김정미 씨

입력 2011-06-08 09:28:33

"언니, 빨리 일어나! 이젠 내가 엄마역할 할게"

4남매의 맏이로 엄마와 가장 역할을 했던 김정자 씨는 석 달째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4남매의 맏이로 엄마와 가장 역할을 했던 김정자 씨는 석 달째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언니, 어서 일어나. 언니 제발."

7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중환자실. 김정미(가명'48) 씨는 김정자(가명'52) 씨의 손을 꼭 붙잡고 울먹였다. 정자 씨는 폐에 생긴 곰팡이균 '폐 국균종' 때문에 석 달째 침대에 누워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정미 씨에게 언니 정자 씨는 곧 엄마다. 정자 씨는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 대신 30년 넘게 4남매를 따뜻하게 품어줬다. 그의 삶에서 자기 자신은 없었다. 동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삶만 있었다.

◆"언니, 미안해"

언니는 언제나 우리가 먼저였다.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살 때도, 항상 우리 4남매를 먼저 챙겼다. 나와 네 살 터울밖에 안 났지만 무더위 속 시원한 나무 그늘처럼 항상 우리를 품어줬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너희 엄마가 화병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당시 대학까지 나왔던 아버지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사람들이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교육 수준과 가정의 평화는 비례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활짝 웃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3년 뒤 어머니를 뒤따라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학생이던 언니는 학교를 그만뒀다. 그때부터 극장 매표소에서 영화표를 팔고, 저녁이면 남의 집에서 미싱을 박아주고 품삯을 받아왔다. 부모님의 죽음 뒤 언니의 어깨에 엄청난 짐이 실렸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결혼도 포기, 병만 얻어

"왜 결혼 안 해?"

내가 언니에게 수백 번 던졌던 질문이다. 웃음으로 대답을 피했던 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다. 우리 4남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언니는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못 배운게 한이 됐는지 언니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동생들 챙기느라 공부를 포기했으면서 결혼까지 미루는 것이 나는 못마땅했다.

어린 시절 언니는 엄마보다 엄했으며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우리가 손발을 씻지 않으면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밥을 먹을 때는 누구보다 인자한 엄마였다. 상추쌈을 싸서 둘째인 내 입에 제일 먼저 넣어주고, 남동생과 여동생 두 명의 입에 차례대로 넣어줬다. 차가운 겨울, 마당에서 빨래를 할 때도 4남매는 마루에 앉아서 언니가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빨래를 거들려 하면 "손 시리다"며 나를 밀어냈다. 언니는 진짜 엄마였다.

우리를 보살피느라 언니 인생에서 결혼을 지운 것을 왜 몰랐을까. 우리는 모두 짝을 찾아 떠나도 언니는 여전히 혼자였다.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언니는 혼자다. 언니는 내가 고등학생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았다. 밤늦게까지 미싱일을 하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는 언니는 병원비가 아까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때 치료만 제대로 했어도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생의 기도

지난해 겨울 피를 심하게 토하던 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며 입원을 권했다. 폐 속에 곰팡이균이 퍼지는 '폐 국균종'이라는 병이었다. 그때 폐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400만원이 넘는 1차 수술비는 4남매가 조금씩 힘을 모아 마련했다. 우리 때문에 평생 희생만 한 언니를 위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수술을 받으면 병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언니는 계속 피를 토했다. 올해 4월 다시 병원을 찾아 큰 수술을 받았고 그때부터 중환자실에서 누워 지낸다. 벌써 석 달째. 쌓인 병원비가 1천만원을 넘어섰다.

언니는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한다. 중환자실 침대 옆에는 폐 역할을 하는 인공호흡기가 언니를 지켜주고 있다. 목에 난 구멍에 꽂혀 있는 긴 호스는 언니가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움직인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1분에 28번 숨을 쉬는 폐가 언제 제 역할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콧구멍에 연결된 긴 줄은 유동식이 들어가는 생명줄이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언니는 두 개의 줄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다.

언니와 나는 눈으로 소통한다. 언니는 말 대신 손가락 움직임과 눈빛으로 내게 대화를 걸어온다. '정미야, 빨리 일어날게.'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나는 병원 3층에 있는 기도실에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우리 언니를 지켜주세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이 못난 동생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바랄 뿐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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