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정답이 아닌 해답으로

입력 2011-06-07 10:45:51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나. 전 과목 올 백(100)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 문제가 오답으로 처리되었다. 당시 나는 선생님에 대한 도전은 상상도 못할 소심한 모범생이었기에, 혼자 찝찝한 기분으로 올 백에 대한 기쁨을 접었다. 그러다 며칠 후 용기 있는 누군가가 선생님께 그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선생님께서는 그 문제의 답이 두 개라고 공인해 주셨다. 나는 올 백이 되었고,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나는 이런 행운도 있구나 생각했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기말고사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아홉 시 시험 시간에 맞춰 학교를 갔다. 당시 시사적인 교양 강좌였던 그 수업은 아무리 내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론으로 내용이 귀결되었다. 교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답은 알겠으나 나는 도저히 나를 속이면서까지 그 답을 쓸 수가 없었다. 한창 피 끓는 청춘이었나. 과감히 백지 투혼을 발휘하며 가장 먼저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본 지금, 큰 감흥도 없이 단지 버릇없는 행위였지만, 당시 나는 나름 비장했었다.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한 지 한 3년쯤 되었을까. 나는 나의 사회생활 방식에 대해 총체적 점검을 필요로 했다. 30여 년 동안 큰 문제없어 보였던 내 성격은 성과 중심적인 조직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튀지 않고 무난하여 웬만해서는 성격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직장생활에서는 별로 신통치 못했다. 큰 역량 없이 성격만 좋아봤자 조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별 이득이 없다. 적당히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면서 동료들과의 협력에 최선을 다하고, 이슈를 선점하면서 양보와 배려도 필요한 이 복잡다단한 것이 사회생활의 생리임을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좀 더 단순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는 정답이 하나여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 이상의 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했지 싶다. 나이가 들면서 정답은 왜 하나여야만 되냐고 반항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그만큼 넓어졌지만, 뭐든 분명하게 결론지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도움이 될 일 등을 가름하는 것은 무진장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정답과 해답 사이의 갈등이었지 싶다. 사회인이 되면서 나는 모든 것을 접고 다시 정답이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저것 새겨보고 인정하면서 나까지 잘될 여력이 없다. 여기서 잘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정답만을 골라 엮은 인생의 백 점 레시피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행로로 봤을 때 이는 분명 아이러니다. 나는 누구보다 다양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렇기에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청년기에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정답에 대한 맹신이 고개를 자꾸 든다. 정답이 아님을 알지만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 답에 나를 옭아매어야 안심이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로 무조건 가야만 할 것 같은 강박, 동질한 이 집단을 벗어나면 완전히 낙오될 것 같은 불안, 궁극에 잘못된 삶으로 평가받을까 싶은 두려움 등이 일방적인 정답 체제를 강요한다. 더구나 문제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방향만을 정답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간다면 옳지 싶다는 기대감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순간 내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금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걱정이 된다. 아직 집이 없다면 앞으로의 고생이 염려된다. 직장이 있음에도 차가 없으면 곧 살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정답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다양성이 화두이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일방적인 정답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으리라 본다. 도시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과 소수자의 권리 등이 주목받을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개인 간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집단적 동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해답과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더 이상 안락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가혹하게 다스려야 할지 현재의 달콤함을 즐겨 미래의 추억으로 삼을 것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답이 있으므로.

김성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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