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부터 사용하고 있는 우리 대구시의 슬로건은 "칼라풀 대구(Colorful Daegu)"이다. "다양한, 다채로움"을 의미하여 젊고, 밝고, 멋지고,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 이미지를 제공하여 다양한 모습의 발전적인 대구를 표현하고자, 청색(blue), 녹색(green), 적색(pink), 황색(yellow)으로 구성된 의미와 이미지로 시 홍보의 거의 모든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디자인 코리아', '디자인 서울' 등의 슬로건과 나란히 놓고 보면 '칼라풀 대구'의 의미도 도시와 건축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여겨져 건축가로 내심 기쁜 일이나, 혹 '외형의 특이함만을 부추기는 선동의 구호로 오해되어 쓰이지 않을까?' 걱정됨 또한 사실이다.
기적처럼 이뤄놓은 경제성장의 이면에 어둡게 자리 잡은 '문화적 컴플렉스'의 반향으로, '서구를 바라보는 사대주의적 문명(문화)화'는 건축 외형은 물론 건축 속에 내제된 정신의 왜곡에 까지 우리를 길들이고 있다. 그리고 건축의 외형이 도시 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서 활용됨에 따라 건축의 본질은 더 왜곡되게 되었으며, 그로 과장된 건축은 그 속에서 영위되는 도시민의 삶을 또다시 유린하는 사슬로 존재하게 되었다. 급성장의 조건처럼 정당화된 '섬세함의 무가치화'와 '무조건적인 긍정'은 동원된 다수결의 원칙으로 '본질과 주변'은 물론 '정의와 불의'까지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건축의 본질은 흔히 강조되는 디자인(Design)에 있지 않고, 플래닝(Planning)에, 그 플래닝 과정 속에 이미 내제되어 있음을 상기해야한다. 건축이란 조각화되거나 꾸며지는 외피의 조정 작업이 아니며, 건축공간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콘텐츠의 생성과 프로그램의 구축이 훨씬 본질에 가깝다.
많은 여행객들이 경험으로 선택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본 블타바 강변의 빼곡한 건축물들과 도시의 골격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주황색 박공지붕과 철저하게 통제된 듯 한 무채색의 벽, 그리고 간간히 솟은 중세건물이 프라하를 아름답게 하는 구성요소의 전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아름답다 감동하는 대부분 도시들이 갖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건축이 단순히 기술로서의 공법, 재료, 양식 등의 '시대적 특성'만을 반영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그 사회, 그 문화 속에 중심되고 우선되는 '위계적 가치'로 드러나고, 그 속한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숨길 수 없게 됨으로 그 자체가 바로 역사가 된다면, 우리는 도시와 건축을 지금부터라도 정의롭고 진지한 사회적 약속과 규범으로,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철학으로 다시 되돌아 봐야한다.
유럽의 역사 도시들이 근대화의 급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옛 시가지와 건축물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시개발의 배후에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이념과 삶에 대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우리는 서구 도시를 모델로 현대화를 거듭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도시계획의 기법'뿐 정작 중요한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단일건축 또한 좋은 건축일수록, 사용된 디자인 언어와 재료의 질감, 색상 등이 심플하며 명쾌하다. 이는 그 건축물이 스스로 조형화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며, 그럼으로 인해 그 속에서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건축의 목적(우리의 삶)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때로 건축이 특별히 강력한 인상으로 필요하다 해도, 그 주변의 맥락(컨텍스트)이 먼저 진지하고 조용해진 완성도(quiet quality)를 갖춰야 한다. 건설자원의 고갈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하여서도 건축물은 오래 쓸 수 있어야하고, 오래된 후에도 쉽게 고쳐 쓸 수 있어야 한다. '제한된 비용을 유행에 민감한 이미지에 쓸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가치에 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문화적이면서도 지적인 대부분의 일들은, 밀어붙여 이루려하는 슬로건으론 절대 이뤄낼 수 없다. 까다롭지 않음(비전문적인)과 매사 긍정(동원되고, 다수결로 결정된)으로 만든 종합계획(Master Plan)으론 빠른 변화는 가져올 수 있으나, 우리에게 꼭 맞는 미래(도시와 건축)를 제공할 순 없다.
"칼라풀 대구(Colorful Daegu)'를,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이 돋보이는 살기 좋고 특별한 곳'으로, '숲과 강 등의 생태가 살아있고 자연으로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건축과 도시에서 색깔을 빼야만 한다.
ADF건축 대표/건축사 김홍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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