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과 달리 군번 받고도 국가유공자 제외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는데 공부가 무슨 소용 있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전쟁터에 뛰어들었어."
제56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동 6'25 참전소년지원병중앙회 대구지부.
윤한수(76) 부회장은 빛바랜 사진을 뒤적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진 속에 있는 30명의 군인 중 윤 부회장이 가장 어린 군인이었다.
윤 부회장은 1950년 계성중학교 3학년, 만 15세 때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나이는 어렸어도 군번을 받은 정식 군인이었다. 윤 부회장은 6'25 발발 직후 입대해 국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 작전 후 평안도 박천까지 북진하기도 했다.
윤 부회장의 전쟁담에 3명이 더 가세했다. 모두 6'25에 참전했던 소년병들이다. 자기 키만큼 길고 무거운 총을 들고 인민군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어린 소년들은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노병'이 됐다.
이들이'소년병'이라는 명칭을 받는데만 꼬박 59년이 걸렸다. 국방부는 2009년에서야'18세 미만의 병역 의무가 없는 자들 중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군에 지원해 6'25 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한 자들은 소년병'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들의 몸에는 전쟁의 상흔이 여전하다. 16세때 총을 들었던 신문현(78) 씨는 왼쪽 어깨에 총알을 맞았다. 부상 후유증으로 신 씨의 몸은 걸을 때마다 왼쪽으로 기운다.
윤 부회장 등은'소년병'과 '학도병'은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소년병들은 전쟁 당시'군번'을 받고 정규 군인이었지만 학도병들은 군번 없이 군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
이병길(76) 씨는 강원도 오대산과 인제전투에서 활약했다."우리는 성인 군인과 똑같이 최전방에서 싸웠던 진짜 군인이었다. 내가 받은 군번이 이를 증명해준다"며 제대증서를 내밀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소년병이지만 여전히 차별받는 현실이 가장 괴롭다. 특히 학도병보다 못한 인식과 대우는 이들을 두 번 고개 숙이게 한다.
신문현 씨는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년병들은 매달 참전명예수당으로 나오는 12만원을 손에 쥘 뿐"이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로 징집당한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하고 연금을 지급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했다.
산 자는 물론 죽은 자들도 차별받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에 순국 소년병들을 위한 기념관이나 추념물 하나 없다.
하명윤(79) 지부장은 "당시 3만명이 넘는 소년들이 전쟁에 참가했는데 정부는 아직도 소년병을 홀대하고 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경제적 지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국가에 기여한 만큼 최소한의 예우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6월 현재 대구에 생존 중인 6'25 참전 소년병들은 130여명이며 소년병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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