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경상도 사람들

입력 2011-06-04 08:00:00

"한나라당의 위기가 부산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민심이 폭발 직전이다. 부산발 한나라당 위기는 대구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공항 무산으로 돌아선 민심이 과학벨트 무산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1일 '매일신문 정치아카데미' 특강에서 나온 이야기다. 민심이 부산저축은행비리에 대한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解弛)와 부패불감증으로, 특히 대구경북은 잇따른 대형 국책사업에서의 푸대접과 소외, 외면이 더해져 말 그대로 시한폭탄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어떤 심판이 내려질지 자못 궁금하다.

예로부터 영남 즉 경상도는 국가 안위(安危)에 관해서거나 큰 변화가 필요할 때 나름의 역할을 주도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대치할 때는 거의 매년 전쟁이었다. 삼국통일(676년)이 이뤄진 7세기에만도 무려 150여 차례(삼국사기)나 전쟁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를 종식시킨 것은 경상도의 신라였다.

그리고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의 국란 때도 도망간 임금과 관리를 대신해 경상도 민초(民草)를 중심으로 '스스로 일어나' 의병(義兵)이 되어 죽창(竹槍)과 맨손으로 왜적의 조총(鳥銃)에 맞서 나라를 지켜냈다. 임진왜란으로 의병의 역사는 시작됐다. 영남에서 시작된 의병은 일제 항일 의병으로 되살아났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은 경상도, 특히 경북이었다. 그 의병을 기리는 '의병의 날'이 1일 정부 공식 기념일로 첫 행사를 가졌다.

이후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자유당 정부의 부정부패에 맞서 대구 학생들이 첫 시위를 벌인 데 이어 그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의거, 그리고 4'19혁명으로 정부를 굴복시킨 곳도 경상도였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특정당 중심의 투표로 '수구골통' '보수골통' 등 비하(卑下)소리에 자존심을 구긴 곳도 경상도였다.

조선조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풍속이 예의와 문학을 숭상하고'(俗尙禮讓文物) '인재의 곳간'(人材府庫)이라 했던 경상도가 성호(星湖) 이익의 지적처럼 '오직 한 종내기, 벼슬하는 가족을 세상사람이 부러워한' 경기(서울수도권)의 횡포에 맥을 못추고 있다.

'어짊을 숭상하는 상도(上道尙仁)와 의로움을 중시하는 하도(下道主義)'의 경상도(이익), '벼슬한 사람이 많은 좌도(左貴)와 부자가 많은 우도(右富)'의 땅 경상도(이중환)에 사는 영남인들의 앞날과 선택은 뭘까.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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