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23. 외로운 현대인들

입력 2011-06-04 08:00:00

저녁에 술 한잔 어때? 먼저 손 내밀어 봐라

행복은
행복은 '늙어가는 것'이다. 영화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에서 불사(不死)'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상상을 자극하기엔 너무 황당한 줄거리지만 보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주인공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부럽다기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자연스레 늙어가는 것 또한 조물주가 주신 선물이 아닐는지…. 글/일러스트=고민석 komindol@msnet.co.kr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아예 주중엔 조부모가 손자를 키우고, 주말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부도 많다죠.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비록 떨어져 지내더라도 가족이 주는 힘은 무한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친구가 많아도 결국 두 다리를 땅에 딛고 꿋꿋하게 설 수 있게 해주는 힘의 근원은 가족입니다. 붓자루를 움켜쥔 아기의 손에서 행복의 힘을 봅니다. 사진=조윤정(효성병원 주최 제3회 1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아예 주중엔 조부모가 손자를 키우고, 주말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부도 많다죠.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비록 떨어져 지내더라도 가족이 주는 힘은 무한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친구가 많아도 결국 두 다리를 땅에 딛고 꿋꿋하게 설 수 있게 해주는 힘의 근원은 가족입니다. 붓자루를 움켜쥔 아기의 손에서 행복의 힘을 봅니다. 사진=조윤정(효성병원 주최 제3회 1'3세대 공감 행복사진 공모전 웃음가득상) 글=김수용기자

#이야기하나- 아는 사람은 많은데…

퇴근 준비를 하는 회사원 손모(43) 씨의 표정이 영 어둡다. 약속이 없냐고 묻는 동료들에게 억지 웃음을 지으며 "가족들과 저녁시간을 보내야지"하고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그저 누군가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어때?"라고 전화해 주길 기다렸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만 500명이 훨씬 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 편히 술 한 잔 하자고 먼저 이야기 꺼낼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내가 지금껏 잘 못 살았던가?'

#이야기 둘- 노숙자에게 얘기 걸어보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박모(23) 씨는 새삼 선진국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를 꺼냈다.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말을 건넸더니 낯선 외국 청년인데도 친절하게 말벗이 돼 주고 이런저런 관심을 보이며 30분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다른 도시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며 "역시 선진국이라 여유가 있어서 그런 지 무척 친절했다"고 입이 마르게 유럽 사람들을 칭찬했다. 그 말을 듣던 한 친구가 이렇게 대꾸했다. "두류공원이나 지하철 반월당역에 있는 노인들에게 말을 건네 본 적은 있냐? 아마 그 분들은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해 줄걸."

#이야기 셋- 연락해줘서 고마워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권모(38) 씨는 얼마 전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아이들 때문에 기껏해야 서너달에 한 번쯤 만나는 친구들(사실 친구라기엔 서로 조심스런 사이지만)에게 주말에 함께 놀러가자는 문자를 보냈더니 5분도 채 안돼 답장들이 속속 도착했다. '안 그래도 뭐할까 고민이었는데 잘 됐네', '역시 민지 엄마는 대단해. 나는 다른 사람 바쁠까봐 말도 못꺼냈는데', '연락줘서 너무 고마워요' 등등. 권 씨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멋쩍게 웃었다. 자신도 한참을 주저하다가 보낸 문자에 이토록 열렬히 반응해 주다니. 현대인들이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산다지만 역시 외롭구나하는 걸 새삼 느꼈다.

2008년 호주의 한 경영자문회사가 18~64세 호주인 8천500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사결과, 휴식과 안정을 취할 때 가장 많은 행복을 느끼며, 신체적 활동은 행복을 느끼는데 적게 작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63%가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다. 어떤 휴식인지는 남녀간에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50% 이상이 인터넷 검색, 온라인 게임, 친목 네트워크 이용과 같이 온라인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고, 여성은 55%가 음식을 만드는 등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남성과 여성의 절반가량이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일에서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했고, 남성의 38%와 여성의 28%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답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애완견을 키울 때 더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설문 결과에 대해 이 회사의 칼렌 필립스 대표는 "사람들은 무엇을 소유하고 성취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활동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데서 더 행복을 찾는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은 외롭다는 말이다. 행복한 사람 곁에는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속에서 행복한 에너지가 뿜어나오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라고 불평만 하고 스스로 움츠리기보다 먼저 손을 내밀면 어떨까. 당신이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한숨을 쉴 때 다른 누군가도 똑같은 푸념을 하고 있을테니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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