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달개비, 컴퍼리, 창포 꽃이 피었습니다. 자주달개비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한낮이 지나고 나면 꽃의 모양을 닫아 버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핍니다. 수줍은 탓일까요? 컴퍼리의 초롱같이 고개 숙인 핑크빛 꽃은 잎의 무성함에 비해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조롱조롱 달려 있습니다. 청초하면서도 당당한 것은 창포 꽃입니다. 물기를 머금은 이 노란 꽃은 동양적인 여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봄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향기를 전달합니다.
채소들도 싱싱하게 크고 있네요. 봄날 정성들여 심은 씨앗과 모종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주위는 파랗게 녹음이 짙어가고 감나무 이파리나 뽕나무 잎은 지금 따서 찌고 말려서 찻잎으로 달여 마실 수 있습니다. 매화, 살구나무에도 열매들이 여기저기 달려있고 오월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꽃이 폼 나게 피었습니다. 동네 어귀에는 모란까지 우아하게 피었고 불두화도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여름이 다가와도 식물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제 뜻을 다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마을 주위의 집 벽들은 누군가의 봉사에 의해 파스텔 톤으로 여러 가지 색을 칠해 놓았습니다. 화가인 내가 보아도 멋진 색으로 단장해 놓은 것 같네요. 동네 주위가 산뜻해 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봉사에 의해 주위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일이 자주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대구시 숙원사업인 대구미술관이 개관하였습니다. 이런 멋진 미술관이 개관했다는 사실은 대구시의 새로운 매력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 미술관이 우리 삶 속에, 생활 속에 호흡을 같이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미술관이 생기기까지 고생한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까이에서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세련된 공간에서 언젠가 전시를 해볼 수 있다는 희망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작업에 임한다면 그것 또한 작품 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지역 작가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예술 활동일 것입니다.
참,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에게도 권합니다. 대구미술관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이 공간은 특정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시민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대를 해주지 않는다고요? 제가 여러분을 초대하겠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초대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여러분들을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 374번지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대구스타디움(월드컵경기장)근처이지요. 가족들과 함께 가보십시오.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하는 일 없이 바빠서 나의 작업을 소홀히 했습니다.
지금부터 본인의 작업도 시작해야지요. 우선 자주달개비, 컴퍼리, 창포 꽃을 그려야겠습니다. 하늘 위로 가지를 쭉쭉 뻗은 모과나무, 양살구, 개암나무를 그려야 되겠네요. 아욱 이파리가 큼직하고 씩씩해서 단색으로 드로잉을 쓱싹 해치워야겠습니다. 지난날 섬진강 따라 남해를 거쳐 삼천포, 통영으로 가면서 찍은 사진을 참고해야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이었지요. 지난날 앨범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도 그려봐야 되겠네요. 남산동 근처의 낡은 집이나 벽들도 정답게 보입니다. 먼 기억속의 풍경들. 다시 보고 싶은 얼굴들은 연애편지 쓰듯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거닐고 싶은 길이나 한적한 강가의 풍경들. 슬프고도 화려한 애잔한 마음이 든 꽃들도 그려 보고 싶습니다.
식물들의 절정기에 핀 꽃들은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발산하는 예술가의 혼 같아서 내가 그린 꽃들은 예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호박을 한 번씩 그립니다. 둥그렇거나 길쭉하거나 펑퍼짐하거나 이러한 모양을 가진 호박들은 우리 주위의 마음씨 좋은 이웃같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철지난 호박그림이 뭐냐고 하겠지만.
봄날의 호박모종이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그림들이 모여지면 전시회를 열어야 되겠지요. 당신을 초대합니다. 전람회의 그림들이 있는 곳으로….
세상의 우울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월 말이나 칠월이 시작할 무렵, 방천시장 내 '토마갤러리'라는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의 매혹적인 그림과 함께.
정태경(서양화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