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서울 언론 시골 언론

입력 2011-05-30 10:52:15

'서울 언론'은 모두 다 언제나 올바르고 정의(正義)로운가.

신공항 백지화 등 지역 균형 발전에 관한 한 그렇지 못했다.

정직과 공정 보도의 상징이라는 워싱턴 포스트가 만든 공정보도 기준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워싱턴 포스트는 '연방정부의 관리가 내세우는 국가 이익이 모든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 이익과 자동적으로 합치되는 것은 아니다'는 인식 아래 기사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나 한국의 서울 언론들은 정부 관리가 '신공항은 국가 이익과 맞지 않다'고 슬쩍 애드벌룬을 띄우면 곧바로 '신공항 무용론'으로 가공해 마치 그들의 판단이 곧 국가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 양 몰아가 굳혀버린다. 그럴 때마다 '정통한 소식통…'이나 '정부 당국자…' '여권 일각에서…'라는 상투적 논법으로 비켜간다. 당당하게 '이게 우리 생각이오'라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스크 뒤에 숨은 권력자들의 목소리를 전달만 했을 뿐, 뒤 책임은 우리 탓이 아니라는 식이다. '소식통에 의하면…'이란 기사들은 중앙권력 주변에서 정보 흐름에 정통해 있는 소수 기득권층들만 그 소식통이 누구인지, 발언 뒤에 숨은 메시지나 의도가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간파해 낼 수 있다. 일반 독자나 특히 지방 주민들은 짐작도 판독도 못 한다. 소식통이란 이름의 마스크 쓴 권력자의 속셈이 서울 언론의 가공을 거쳐 '국가 이익'으로 둔갑돼도 정말 그게 국가 이익인가 보다며 긴가민가하는 새 당하기만 할 뿐인 것이다.

지난주 지역의 10개 시민사회단체 세미나에서 제기한 '서울 언론 나팔수론(論)'은 서울 언론 폐해의 본질을 잘 짚어냈다. 그렇다면 서울 언론들은 왜, 어떤 이익을 위해 수도권 독자들에게 유리한 논조나 보도가치에 기울어 있는가. '지역'은 곧 '시골'이라는 단순한 우월주의 때문인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들에게서 시골 독자 계층은 보호하고 역성 들어줘야 할 대상이 못 된다는 계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시골 독자나 시청자는 서울 언론의 밥줄인 대광고주들에게 큰 고객이 못 되고 따라서 서울 언론이 살찌려면 광고주가 좋아하는 수도권 독자 그룹 쪽에 더 충성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하기야 미국의 대도시 신문들도 도시 중심부에 사는 가난한 흑인이나 중남미 출신 대신 도시 외곽의 부유 계층의 독자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다. 소득 수준이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광고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LA 타임스 경우 '타임스 구독 세대는 구독하지 않는 세대에 비해 1주일에 한 번 이상씩 포도주와 샴페인을 즐길 가능성이 84%나 더 크다'는 것을 선전처럼 퍼뜨린다. 광고주들에게 우리 신문의 독자는 물건 많이 사는 돈 많은 고급 독자라는 걸 홍보해서 광고 수익과 단가를 올리자는 전략이다. 신문사마다 일반적 대중의 이익에 충실하기보다 될 수 있으면 부유하고 힘 있는 계층 독자에게 봉사하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조차 일반 의류보다 모피코트를 구매하고 뉴욕 근교보다는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즐기는 독자층의 입맛에 맞는 지면 제작을 하고 있다.(콘라트 핑크의 언론 윤리 자료)

서울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LA 타임스나 NY 타임스처럼 경제력이 강하고 정치권력이 집중된 수도권 독자들의 구미에 맞는 논조와 지면 구성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수도권 중심의 이익과 요구에 영합하는 서울 언론이 공룡화돼 갈수록 지방의 이익은 점점 쭈그러들고 보호막은 얇아져 가게 돼 있다. 지난번 신공항 백지화에서 나타난 시골 이익 파괴가 그 증후의 하나다.

앞으로 중앙 대(對) 지방의 더 큰 이익 마찰이 있을 때 서울 언론의 펜대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의 대안은 따로 없다. 모피를 사 입고 카리브 해에 휴가 갈 만한 소득과 광고주가 눈독을 들일 만한 구매력을 높이고 정치판이 침 흘릴 만큼의 인구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골 이익을 방어하고 싸워줄 '시골 언론'을 키워줘야 한다. 지역 신문이 빈약하고 읽을 게 없다는 식으로 내쳐버리면 점점 더 허약해져 시골이익을 위해 싸워줄 힘을 잃는다.

내 집 지키는 강아지가 덜 미덥다고 밥 굶겨 야위게 두면 옆집 큰 개에게 물리는 일밖에 없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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