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옛 도심, 이야기로 살아난다] <22>전매청 대구지청과 대구 10·1 사건

입력 2011-05-28 16:05:41

"양놈한테 식량정책 잘하라는 거요, 제발 총은 쏘지 마세요"

그림: 김영대 화백
그림: 김영대 화백
대구 KT&G 옛 건물.
대구 KT&G 옛 건물.
오철환(소설가
오철환(소설가'대구광역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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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청 정문에는 퇴근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떻게든 담배를 숨겨 나가려는 직원과 기어코 이를 적발해 내려는 직원과의 요상한 숨바꼭질이 긴박하게 진행되었다. 숨바꼭질이라기보다 오히려 '숨은 물건 찾기'라는 편이 더 적합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남자는 남자 검사원이 검사하고, 여자는 여자 검사원이 검사했다. 검사원이 보는 곳은 비록 들쑥날쑥하고 무작위로 검사했지만 숨긴 담배를 귀신같이 적발하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적발하고도 찾은 담배를 압수하지 않고 눈짓을 하곤 아무 일도 없는 듯 통과시켜 주는 것이었다. 부정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돌아가며 당직 때 검사를 하였으나 그것은 오히려 모두 공평하게 공모하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으로 전용되었다. 모두 같은 입장이라 담배를 숨길 수 있는 곳은 뻔했으므로 차라리 서로가 편했다. 주로 담배를 갑 채로 빈 도시락 속에 채워 가지고 나갔다. 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몸으로 때웠다. 주머니 속은 기본이었고 속옷이나 신발 속에 담배 개비를 숨겼고 여자들은 긴 머리카락 속이나 브래지어 속에도 숨겼다. 이러다 보니 정상적으로 출고되는 담배보다 비정상적으로 나가는 담배가 더 많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전매청의 월급은 보통 700원 내지 800원 수준으로 아주 낮은 편이었으나 비공식적으로 담배를 빼돌려 부수입을 챙겼기 때문에 전매청 1년 다녀서 집 한 채 못 사면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전매청의 위상에 맞지 않게 낮은 월급을 책정한 이유가 어쩌면 어느 정도의 부정을 감안한 배려(?)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대구에서 전매청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최고의 직장이었으므로 취업하기가 매우 어려워 삼 년치 월급을 한몫에 상납해야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납은 지청장 이하 간부 직원들의 몫이었으므로 가끔씩 부정한 비리 직원들을 적발하고 이들을 해고하여 티오를 만들어 내는 작업도 필연적이었다. 이러한 부정과 비리는 해방이 되고 난 후, 더욱 심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전매청도 적자로 휘청거리게 되었다.

검사하는 사람이나 검사당하는 사람이나 이 짓을 왜 하는지 황당해했다. 김명식도 퇴근할 때마다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쇼 아닌 쇼를 하는 꼴에 화딱지가 났다. 욕지거리가 목구멍에 올라올 때쯤, 용케 차례가 돌아오곤 하는 것도 신기했다. 명식이 몸 검사 준비를 하려고 하는 찰나, 늙수그레한 사람이 한 명 들어오며 어깨를 툭 쳤다. 전매청에 30년 이상 근무한 이붕조였다. 붕조가 새치기를 하며 들어와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는 나이도 많은 데다 근무연수도 30년 이상 된, 그야말로 대구 전매청의 최고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명식아, 오늘 대포 한잔 할까?"

"당연하죠, 형님."

"참한 아가씨 많은 방석집 발굴했다."

"그게 어딥니까?"

"나만 따라와."

붕조는 엄지를 치켜들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검사는 붕조의 끗발에 눌려, 보지도 않고 통과되었다. 명식과 붕조는 전매청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담배 가게에서 숨겨 나온 담배를 팔았다. 담배는 개비 단위로도 팔려나갔기 때문에 가지고 나온 담배는 원하는 대로 바로 처분되어 현금화했다. 현금을 마련한 두 사람은 북성로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붕조는 미닫이 유리 창문에 빨간 글씨로 '대포'라고 쓰인 술집으로 명식이를 끌고 들어갔다.

"형님, 방석집이라더니?"

"1차 걸치고 가야지? 장사 한두 번 하냐?"

"오늘 또 형님한테 당하는 거 아닙니까?"

"자식, 당하고만 살았나? 오늘 내가 끝까지 책임질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또 자갈마당으로 때우려는 건 아니겠죠?"

"이 형님만 믿고 술이나 마셔!"

붕조는 못 미더워하는 명식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거듭 건배를 청했다.

2

대구 전매청이 날이 갈수록 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자 이를 타개하고 경영을 정상화시키고자 새로운 지청장이 파견되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머리가 비상하고 새로운 학문에도 밝았다. 대구 전매청에 부임하자마자 대구 전매청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대적인 경영 혁신을 단행하였다. 우선 직원 수를 대폭 줄이고 노동 강도를 그만큼 높이고자 시도했다. 음성적으로 빠져나가는 담배를 없애고자 경비를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검사를 위해 별도의 전문 인력을 채용했으며 간부 직원들이 그 검사 현장에 배석하도록 조치했다. 담배를 빼나가기가 매우 힘들어지게 되자 직원들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해방 정국의 극심한 사회적 혼란으로 물가는 살인적으로 오르는데 실질 수입은 오히려 반 이하로 줄자 직원들은 먹고사는 문제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굶주린 직원들은 담배를 말아 붙이기 위해 지급되는 풀을 먹기 시작했다. 회사 측에서 풀을 먹지 못하게 풀에 염료를 탔으나 그래도 풀을 먹어치우게 되자 회사는 마지못해 점심밥을 제공하는 자구책을 내어놓았다.

퇴근 시 검사가 철저해지고 적발 시 바로 해고 조치되자 퇴사를 각오하지 않고는 감히 이전같이 담배를 가지고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회사는 곧 흑자로 돌아섰으나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불만이 팽배했다. 정문에서 검사를 마치고 나온 명식과 붕조는 말없이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명식아, 술 한잔 할까?"

"아이고 형님, 생각이야 굴뚝같지만 옛날 같지 않잖아요. 돈이 말라서 죽을 지경입니다. 세놨던 집, 팔려고 내놨습니다. 경기가 나빠 집도 안 팔려요. 좌우로 갈려 대가리 터지라고 싸우고 있는 이 혼란 통에 되는 게 뭐 있겠어요?"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막걸리는 한 사발 하고 가자."

붕조는 명식의 팔꿈치를 잡아끌며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명식아, 이거 배고파 못 살겠다. 이쯤 되면 무슨 돌파구라도 마련해야 되는 거 아니야? 혹시 회사에 무슨 소문 돌아다니는 거 없나?"

"지청장이 무자비하게 비리 직원을 대량 솎아내고 그 자리에 돈을 받고 직원을 넣는다는 루머가 돌긴 하지요."

"그게 정말이냐? 증거 있으면 경찰에 고발하자."

"그냥 루머라니까요. 그렇지 않겠나 하는 희망사항이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옛날이 정말 좋았어. 친일 매국노 한 놈 오더니 여러 사람 정말 애먹인다! 이젠 진짜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닌가?"

"형님이 최고참이니까 깃대 함 잡아보시죠? 제가 바로 뒤따르겠습니다."

"야, 임마. 내가 데모할 군번이냐?"

"그야 그렇지만…"

"흉년에 호열자까지 도니 갈수록 태산이야! 이러다가 정말 말세 오는 거 아닌가!"

3

흉년이 들고 호열자가 창궐하여 대구에서만 2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호열자로 숨졌다. 전염병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자 미 군정청이 호열자를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호열자 전염을 막기 위해 대구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봉쇄하였다. 그렇게 되자 식량 등 물자마저 끊기게 되어 대구에서는 돈이 있어도 식량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형편이 좋은 사람이 겨우 콩나물 갱죽을 먹는 정도였으니 대구 서민의 사정은 극도로 나빠 거의 기아 선상에서 허덕였다. 배가 고파 길거리에 쓰러진 자를 호열자 감염으로 여겨 격리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명식아, 배고파 못 살겠다. 이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좌파들한테 찾아가서 돌파구를 찾아보자.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라는 게 있는 모양이야. 대구에도 경북도평의회가 있다고 하니, 우리 둘이 한 번 접촉해보고 살길을 찾아보자."

"붕조 형님, 좋습니다. 가봅시다. 형님이 앞장 서보시지요."

붕조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명식이도 뒤질세라 빠른 걸음으로 헐떡거리며 붕조를 따라갔다. 붕조는 미리 전평 도평의회 사무실을 수소문해 둔 듯 잰걸음으로 명식이를 인도해갔다. '전국노동조합평의회 경북도평의회'라는 목간판이 세로로 달려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먼지 쌓인 책상 하나가 구석에 놓여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검붉은 옻칠을 한 원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붕조와 명식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속옷 바람으로 원탁에 앉아 졸고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조금 놀란 듯 두 사람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붕조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대면서 인사를 하고 명식이를 소개하자 그제야 감을 잡은 듯 자리를 권했다. 그는 전평 도평의회 간사 이일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붕조는 청산유수처럼 그동안의 회사 사정을 얘기하였다. 간사는 붕조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대구 전매청의 내부 사정을 벌써 대강 알고 있었다며 자신만만하게 대응책을 내놓았다.

"내일 출근하시면 바로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전평에 가입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우리 전평이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착취당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으신 것은 우리 노동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투쟁한다면 우리 권리를 찾고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평등한 사회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고 우리가 단결하고 투쟁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간사는 마치 신파극의 변사처럼 대본을 읽듯이 매끄럽게 술술 이야기했다.

"그런데 노동조합 조합원은 몇 명 되어야 하나요?"

"많을수록 좋겠지만 우선 회사 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부터 되는 대로 가입시켜 우리 전평에 등록하고 전 직원으로 확대시키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출근해서 일부라도 포섭해서 바로 등록하겠습니다."

전평 사무실을 나온 붕조와 명식은 전평 등록에 필요한 양식을 한 움큼 받아 쥐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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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노조인지 보도인지 너무 깊이 간여하지 말아요. 월급이 배가 오르는 것은 좋지만 앞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잖아요. 참여는 하되 요령껏 뒤로 슬슬 빠지세요."

"무슨 엉뚱한 소리 하는 거야! 사나이가 하면 하는 거지, 뒤에 숨다니!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당신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지요. 우리 애들을 생각해야지요. 당신이 안 나서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먼저 나서지 마라는 말이지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잖아요. 욱하는 성질 좀 죽이고 실속을 챙기라고요."

"어허, 남정네가 하는 일에 여편네가 참견해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좌우익이 서로 싸우고 호열자까지 도는 판에 당신마저 노조를 만들어 회사와 싸우겠다고 하니 마음이 온통 뒤숭숭해서 하는 말이지요. 아무래도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아 보여요. 우리 애들 생각해서 좌익인지 노조인지 그런 거 안 하면 안돼요? 석이 아빠, 우리 가는 똥 누고 길게 살아요."

"벌써 끝난 사안을 갖고 자꾸 이야기하면 신경질나는 거 아나?"

만류하는 아내를 막무가내로 눌러두긴 했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명식을 엄습해왔다. 명식은 본능적으로 아내를 끌어당겨 안았다. 불안한 밤은 본능적 충동으로 비로소 안정을 찾아갔다.

5

대구 전매청 노조는 회사 창고에서 예비 모임을 갖고 발기인 격인 이붕조를 지회장으로 선출하고 앞으로의 대책과 전략을 의논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으나 명식이가 월급부터 배로 올려달라고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자 그 다음부터는 손을 쳐들고 발언권을 자기에게 먼저 달라고 난리를 쳤다. 좌중이 혼란에 빠지자 노련한 전평의 이일재 간사가 지회장 대신 회의 진행을 맡겠다고 나섰다. 이 간사가 회의진행 규칙과 방법을 설명하고 질서를 잡아나가자 5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안정을 되찾았고 걸러지지 않은 두서없는 의견들이 점점 정리되어갔다. 회사 측에 강력히 요구할 사항은 주로 월급 대폭 인상, 부당해고 금지, 노동자의 경영참여 허용, 3교대 실시, 노동자의 인권존중 등으로 수렴되어 이들을 첫 번째 노사협의 의안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현장노동자에게도 간부 승진의 길을 보장받자는 주장, 청년임원회의를 만들어 경영에 참여하게 하자는 의견, 직원들에게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정도 제공하게 하자는 제안, 퇴근 때 하는 몸 검사를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 노동자들이 이익분배에 참여해야 한다는 진보적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었으나 이들은 차후 의제로 채택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제외하기로 하였다.

의견을 수렴한 지회장은 지청장에게 노조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1946년 8월 22일 자정까지 이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날인 8월 23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지회장은 너무 강한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전평의 이일재 간사가 전면 파업으로 가야만 노조의 주장을 제대로 관철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전면 파업 카드를 빼든 것이었다. 노조의 요구안을 보고 펄펄 뛰던 지청장도 전평의 전폭적인 동조 파업이 전국적으로 뒤따를 것이라는 전평 간사의 협박에 금세 안절부절못하며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지청장은 노조 지회장과 전평 간사에게 설득과 회유를 통해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다해줄 듯이 했지만 지회장는 회의를 통해 전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한 후 결정된 내용이라 비록 지회장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삼십여 년을 몸담아온 직장을 파업으로 몰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후였다. 회사의 선택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노조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것과 전면 파업. 대구 전매청은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철도청에서는 자기 사업장에도 불똥이 튈까 노조에 굴복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정치권에서도 우익과 좌익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각각 서로 다른 채널로 압력을 가해오고 있었다. 내외에 걸친 복잡한 사정으로 대구 전매청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노조 측이 제시한 데드라인을 넘기고 말았다.

6

1946년 8월 23일, 전매청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각목을 든 감시자들이 직원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 파업은 노동자 약 700여 명이 참여한 국내 최대 규모의 파업이었던 만큼 그 파장 또한 매우 컸다. 대구 전매청 파업은 남로당이 주도한 1946년 9월 총파업과 대구10'1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극적인 기아행진 내지 민중시위의 도화선이 되었고 그 영향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나라를 대혼란에 빠뜨렸다.

10월 1일, 민중 시위에 밀린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2명이 사망함으로써 대구 시민의 시위는 급격히 폭력화되어 경찰서 습격, 유치장 개방, 경찰 살해 등으로 전개되었다.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 식량정책 문제 있다, 군정청은 각성하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먹여놓고 정치해라! 고우 홈 양키, 양키는 물러가라! 밥 달라는 백성에게, 총알이 웬 말이야!"

피 냄새를 맡은 민중 시위대의 구호와 행동은 점점 과격해졌다. 이에 미군정은 10월 2일 대구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 전술군과 중앙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점거된 경찰서 등을 복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양놈들한테 식량 정책 좀 제대로 하라는 것이오! 평화적으로 항의하자는 것이니까, 제발 총 쏘지 마시오!"

강경한 경찰의 진압으로 공포감에 휩싸인 명식은 시위대 대열 앞으로 뛰쳐나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순간 총알 한 방이 그의 가슴에 와 박혔다. 시위대의 함성과 총소리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로 퍼져나갔다. 가는 똥 누고 길게 살자던 아내의 목소리가 명식의 귓전을 맴돌았다.

대구에서 비롯된 기아행진 내지 민중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1946년 말에야 겨우 진압되었다. 대구10'1사건을 3'1운동, 동학혁명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3대 민중항쟁으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으나 아직까지 충분한 연구 없이 통일된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지하를 떠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수 여당 도시 대구는, 한때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만큼 좌익 세력이 아주 강한 지역이었다.

오철환(소설가'대구광역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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