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웃기겠다" 개그공연 나선 '허둥9단' 허동환

입력 2011-05-28 14:54:01

개콘에서 밀리고, 신촌에서 튕기고… 대구에서는 떠야죠

'허둥 9단'으로 알려진 개그맨 허동환이 공연이 한창인 대구 송죽씨어터 객석에서 코믹한 표정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서울 신촌에서 몇억 털어먹었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마냥 웃다, 결국 울게 되는 제 개그 공연은 계속됩니다."

'개그 들어간 거야?' '설마, ○○은 아니겠지요~?' '웃음을 줘야 하는데 감동을 주네' 등 유행어를 쏘며 KBS 개그콘서트에서 짙은 다크서클의 캐릭터 '허둥 9단'을 연기한 개그맨 허동환(40) 씨가 대구에서 새 희망을 들어 올리고 있다. 대구역 인근 송죽씨어터에서 한 달 동안 '허둥 9단의 바라바라' 공연을 하고 있는 그는 선뜻 이런 말을 했다. "제 고향은 부산이지만 제 공연 거점을 대구로 삼으려고 합니다. 관객들의 웃음을 향한 뜨거운 반응에 온몸에 생기가 돕니다. 제 도전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공연은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하지만 높은 객석점유율(한 달 평균 약 70%)과 뜨거운 호응(공연 리뷰만 60건 넘어)에 힘입어 이내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극장 문제와 개런티 등 다소 조정할 문제가 남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대구 공연을 연장한다는 확고한 계획이 섰다. 이 공연을 앙코르 공연으로 기획하려는 곳도 생겨, 이미 어느 정도 진척이 된 상태다.

대구 공연에서 새 유행어도 히트를 치고 있다. '섭섭쿠로'. 말끝마다 들어가는 멘트다. 코를 최대한 길게 늘어뜨리고, 눈은 최대한 코믹하면서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입은 최대한 모아서 상대 배우나 관객에게 약간 코맹맹이 소리로 '아! 이런 거 안 터지네. 섭섭쿠로'라고 말한다. 그러면 동정심에서라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또 빵빵 터진다. 그래도 공연 중 웃지 않는 목석 관객에게는 '와~ 따. 세요. 집에 무슨 일 있소? 확 '페브리즈'(탈취제)로 뿌리고 패브릴까?'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관객 역시 참다 못해 웃음을 쏟아낸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섭섭쿠로'를 함께 온 동료들에게 흉내 낸다. 목석을 웃게 하는 개그 공연의 힘이다. 공연이 끝나는 주간인 26일 송죽씨어터를 찾아가 2시간 동안 '허둥 9단'허동환을 만나봤다.

◆도전이 즐거운 건강한 개그맨, 허동환

'사고가 건전하고 건강했다. 그리고 조금 말이 긴 편이었지만 겸손했고, 확고한 개그 철학을 갖고 있었다.' 감히 평가하지만 인터뷰 1시간 30분 후 느낀 허동환에 대한 짧은 촌평이다.

'허둥 9단' 허동환은 교육자 집안의 차남이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교사며 천주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는 아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형은 성악가, 남동생은 의사, 여동생은 성악과를 나온 회사원 등 머리도 좋고, 예술적 끼도 타고난 집안이다. 그래도 차남인 허동환의 개그맨 인생은 집안에서도 다소 이채롭다. 처음엔 개그맨은 '딴따라'라고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버지도 결국 개그를 향한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허동환이 처음 끼를 발산한 것은 성당 합동공연 때였다. 공연 내용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옥황상제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주정뱅이 역할을 맡은 그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옥황상제님! 됐고~, 술이나 한잔 하러 가이십시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해 관객들을 초토화시키며, 주변 교인들로부터 '저거! 물건이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에도 그는 슬랩스틱 개그의 달인 이주일의 흉내를 기가 막히게 내, 주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도 그는 영구 심형래, 맹구 이창훈 등 바보 캐릭터 흉내를 잘 냈으며, 이 선배들의 연기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 다른 개그에 응용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할 무렵 마지막 공연에선 주인공인 '돈 주앙'을 맡고 싶었지만 미란다의 아버지역인 '돈 곤잘로'를 맡게 돼, 많은 고민 끝에 연기보다는 개그 쪽으로 인생행로를 맞췄다. 그리고 이내 잘 풀렸다. KBS 개그맨 공채 9기로 당당하게 개그맨의 길로 접어든 것. 그의 동기는 박수림, 이창명, 권영찬 등이다. 신기하게도 그의 동기들은 개그맨보다는 리포터나 MC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선배인 KBS 개그맨 공채 7기들은 유재석, 김국진, 김용만 등으로 아직도 그 활약상이 대단한 선배들이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밀리고 개그 들판으로 나와

개그맨으로는 일찍 자리를 잡았던 허동환은 개그 세계의 주변 정세 속에 애매하게 밀리며, 무명 생활을 무려 13년을 해야 했다. 첫 데뷔 때는 주로 굴욕적인 배역이었다. '지네 다리 11번째' '말 앞다리 또는 뒷다리' 등 대사 한마디 없이 심형래 등 대선배를 위한 엑스트라를 감당했다. 그러다 개그콘서트에서 '허둥 9단'으로 캐릭터를 잡으며, 1년 6개월가량 햇살이 비치며 기회가 오나 싶더니 이내 개콘의 후배 기수들에게 밀리며 개그 야인으로 들판에 나서야 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무명시절이 길다 보니 자리를 잡았을 때쯤에는 개그맨 공채 한 자리 수 기수들은 다들 물러나는 추세였다.

그리고 그는 대학로에서 개그공연으로 승부를 걸었다. 물론 이후에도 '개그야' 등 개그 프로그램 또는 요리 프로그램 등에 나오기도 했지만 주 활동 무대는 배고픔이라는 현실 속에 부딪혀야 하는 야인 개그맨 생활이었다. 대학로에서의 공연은 그 시도로서 신선했고, 큰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신촌에서의 도전이었다. 이런 말을 했다. "신촌은 공연이 아니고 술 문화 위주더라고요. 당연 돈 다 털어먹었죠. 아내가 이 어려움을 알았는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한 달에 30만~40만원밖에 쓰지 않고 살림을 살아줬어요. 너무 고맙죠."(웃으면서 눈물짓는 그의 표정은 부인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의 표현이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 신촌에서 '허둥홀'이라는 소극장을 운영하면서 공연을 하고, 많은 개그맨 후배들을 양성한 그는 "지금의 실패는 섭섭하지만 모두 내 인생에서 약"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도전해 앞으로 정찬우'김태균의 '컬투쇼'를 뛰어넘는 좋은 개그 공연을 선보일 것"이라고 개그 공연 연기 및 제작자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허동환의 그 도전에 대구는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좋은 공연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연 한 달 만에 대구를 위한 일에도 나서고 있다. 허동환은 이날 공연 후 오후 11시에 '대구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합기도 시범단'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한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합기도와 개그는 서로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달인'처럼 무도와 웃음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것'.

공연기획사인 처음마음 신승표 기획이사는 "보수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공연 시작 5~10분 만에 빵빵 웃음이 터지는 것을 보고, 대구라는 도시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25일 공연에는 수녀 3명과 스님 1명이 공연장을 찾아 배우들의 애드리브를 통해 더 크게 터질 수 있는 화젯거리를 줬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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