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조부 유품 통해 한방정신 새기고파"
"손때 묻은 한약방 유품마다 할아버지의 혼이 깃들어 있지요. 아버지에 이어 한약방을 반듯하게 일으켜 후대까지 이어가겠습니다."
대구 중구 성내동 약전골목에 있는 중앙한약방. 빛바랜 3층 건물 외벽에는 한방 처방전에 관한 글귀가 빼곡히 적힌 현수막이 둘러쳐져 있다. 처방전에는 증상에 따른 약재 이름부터 신체 부위별 침자리 등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표시돼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 건물 벽면을 살펴보는 경우가 많다.
3대째 한약방 가업을 잇고 있는 박신호(46) 씨. 그는 80년 넘게 한약방에서 사용한 할아버지의 한방 유품을 모아 최근 가족박물관을 만들었고 일반에도 개방했다.
가족박물관에는 할아버지가 남긴 옛 처방전과 필사본 의서, 약장 등 빛바랜 30여 점이 소장돼 있다.
"지난 2007년 화재로 할아버지 유물 상당수가 소실되어 안타까웠어요. 남은 유물만이라도 보존하고 싶었는데 우리 가족끼리만 보기엔 아까웠고 한방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공개하기로 했죠."
가족박물관에는 이 밖에도 할아버지가 사용하신 한약 저울을 비롯해 약재를 빻는 주발 등도 전시돼 있다. 또 할아버지가 직접 쓴 음양오행과 관련한 한방 글귀, 한시가 적힌 병풍 3점도 남아 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산과 바다가 있되 만물 중에 사람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라. 일을 임함에 있어 근신하고 심사숙고해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근본이다.'
이 글귀는 할아버지가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며 가슴으로 새긴 자필 액자 글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일 처리를 신중하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할아버지는 1926년 한약방을 열었어요. 한약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약령시에서 한'중'일 3국에 한약재를 공급하던 대상인 김홍조한약방에서 서사로 일했다고 해요. 당시 약전골목 한약방 서사는 한문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대단한 직업이었다고 전해져요. 한시에도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는 시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을 하기도 했고요."
그는 현재 중앙한약방 원장인 아버지 박재규(79) 씨를 돕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뜻에 따라 1956년부터 50년 넘게 한약방 가업을 잇고 있다. 한때는 북구 침산동에 백산제약사를 설립해 전국에 한약재를 공급한 대상이었다. 현재 대구약령시도매시장을 개설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의 아버지는 약령시보존위원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약령시의 보존 및 발전을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본래 큰형님이 가업을 잇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형님이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가 가업을 잇게 됐어요. 현재 아버지로부터 한약방 수업을 열심히 받고 있어요."
박 씨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1988년 대학 졸업 후 게임회사에서 10년 정도 근무하기도 한 그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했다.
"현재 운영중인 한약방 외에 약재도매를 하는 약업사도 함께 열었어요. 경영학 전공을 살려 새롭게 활로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는 약전골목에서 색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방그룹'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첫 작품으로 한약은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젊은층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시원한 한방차를 개발했다. 다음 계획은 다목적 한방체험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시민 누구나 한방체험 공간에서 한방차나 한방음식을 즐기고 건강상담을 하는 공간이다. 그는 현재 침체된 약령시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이런 상설체험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시원한 한방차를 마시면서 약령시에 얽힌 이야기를 접해보는 것도 멋지잖아요. 시민들이 약전골목에 찾아오게끔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해요. 그래야만 약령시가 살고 약전골목이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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