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 경북지사 특별기고…새로운 지방의 시대를 열자

입력 2011-05-26 10:09:50

우리가 잘못했다. 그것도 크게 잘못했다. 차가운 집무실 바닥에 앉아 목숨 건 단식을 하면서 오만 가지 회한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역민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지 못함이 죄스러웠고 생존의 외침마저 외면당하는 현실이 비통했다. 도지사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나 싶어 괴롭고 참담했다.

지방자치 현장을 지키며 우리의 한계를 진작 알았고 도지사의 자리가 얼마나 작은지도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가슴에 사무치는 일은 없었다.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했지만 부족했다. 정부도 각성해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 것도 우리다. 우리의 책임을 통감한다.

대구경북은 그동안 꿈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좌표 위에 우리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살아왔다. 역사 속의 성공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고, 실패는 찬란했던 과거의 향수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과거 속에 잠자고 있었음을 이번에 뼈아프게 깨달았다. 신공항부터 과학벨트까지, 지난 몇 달간 달려오는 내내 나의 가슴을 짓누른 것은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지만 이 땅에 살아갈 우리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절박함이었다. 그래서 이 악물고 독하게 뛰었다. 시도민들께서 지켜주시고 함께해 주셨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적으로 보고 드리지 못하니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이다.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의롭지 않았고 절차가 올바르지 않아서다.

우리의 주장이 수도권의 높은 벽에 막혀버리는 현실이 너무나 참담해서이다.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도 울분을 삼키며 상심해 하실 시도민들을 생각하면 통한의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제까지 분노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현재의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벽을 여는 자는 어둠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햇빛이 계속 내리치면 사막이 되지만 비바람이 몰아쳐서 또 새로운 싹이 돋아나듯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빛이 살아 있어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너무나 큰 수업료를 치렀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희망마저 꺾이지는 않았다. 대구경북이 역사의 중심에 다시 우뚝 서서 눈치 보고 무시당하는 경상도가 아니라 당당하게 중심에서 역사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그래서 새로운 지방의 시대를 열고 미래를 향해 다시 도전하라는 시도민들의 염원이 이번에 크게 하나로 모였다. 하나로 모인 민심보다 더 큰 자산, 더 강한 힘은 없다. 이 민심의 요구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새로운 지방의 가치와 이익을 위해 나서야 한다. 대구경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산업화를 이루어낸 자산 위에 경북의 혼을 바로 세워 우리의 자존을 되찾고 새로운 지방의 시대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분권과 균형발전 없이는 단연코 선진국의 길을 갈 수 없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지방도 함께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지방을 방치하고는 통합과 발전의 새 시대를 열 수가 없다. 불행한 지방자치의 구조를 깨트려 새로운 지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방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서 지방이 살아있고 백성이 똑똑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지방의 현실을 비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아닌 지역발전을 위해 땀과 피로 얼룩지도록 노력하는, 또 지방을 떠나는 현장이 아닌 흙냄새, 사람냄새 나는 고향으로 만드는 '참다운 지방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잘못 만나 지방에 산 것이 죄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지방에 의한 지방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향한 큰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공룡화된 수도권의 불행을 막아 공존을 모색하는 발전된 지방의 모습으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도 먼저 제시하는 당당한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지방현장 지도자들의 중지를 모으고 목소리를 들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경쟁의 전선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그동안 보여주신 시도민들의 위대한 결의와 결단, 그리고 지역의 미래와 나라의 발전을 위한 높은 열정에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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