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던 여자 아나운서가 오피스텔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서 자살 사건은 기사화하기 주저되는 아이템이다. 기사화할까 말까, 한다면 어느 정도 크기로 실어야 하나 늘 고민이 된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즉,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 자살할 경우 동조자살, 모방자살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42명꼴의 사람이 목숨을 끊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인 '자살 공화국'이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살아있는 고통이 더 크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목숨을 버린다. 자살공화국이 건강한 나라일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이 이미 100년 전에 간파했다. 비대해진 욕망의 크기만큼 좌절도 함께 커져버린 상황에서 도덕과 규범마저 붕괴되면 자살률은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자살률 잣대로 볼 때 우리나라는 중병이 걸렸다. 1997년 19.69명이던 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이듬해 26.69명까지 치솟았다. 이후 외환위기를 넘기고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데도 자살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2009년 현재 31명에 이르렀다.
자살공화국의 이면에서 물신주의와 무한경쟁이 빚어낸 황폐함을 본다. 혹독한 외환위기 경험을 한 국민들은 그 이후부터 재테크에 매달렸다. 그건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이룬다는 '시크릿' 바람도 불었다. "여러분 부자되세요. 꼭이요!"라는 CF 카피가 상징하는 '펀드 열풍'과 '부자 아빠' 신드롬은 물신주의가 낳은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모두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 고용 없는 성장, 국가 불균형 등이 예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신자유주의, 고환율, 부자 감세, 수도권 집중화 정책에 매달렸다. 파이를 키우면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간다는 판단이었지만 순진한 발상이었다. 중산층은 몰락했고 지역 불균형은 더 심해졌다.
요즘만큼 '행복 찾기'가 유행인 적이 없는데 역설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고' 적자생존'승자독식의 유령이 배회하는 '정글'이 됐다. 젖 떼자마자, 걸음마 시작하자마자 무한경쟁 쳇바퀴로 내몰린다.
무한경쟁 사회상을 반영하듯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급기야 1등 뽑기도 모자라 '나는 가수다'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마저 등장했다. 그런데 피 말리는 가창력 경연에 국민들이 푹 빠져들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가수들의 열창이 큰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꼴찌 탈락이라는 잔인한 룰이 없다면 혼신의 감동도 없을 테니 이만한 딜레마도 없다.
놀랍게도 극단적인 경쟁을 바탕으로 한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지난주 일요일 방송에서 임재범이 열창한 '여러분'을 들으며 많은 청중과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임재범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라는 노랫말과 어우러져 심금을 울렸다.
각박한 인심 속에서 누구나 외롭다.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그리운 세상이다. 진심 어린 위로와 관심, 사랑은 자살 직전까지 간 이의 가슴에 삶의 불꽃을 지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자살은 개인적 선택이면서도 엄연한 '사회적 사실'인 것이다. 한 사람의 자살은 유족과 지인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미안한 마음과 상처를 남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사람의 자살은 평균 6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새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본다. 새들에게 창공을 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행동이다. 날기 위해 새는 뼈 속까지 비우는 진화적 선택을 했다. 외기러기는 멀리 가지 못한다. 기러기들의 V자형 편대비행을 보면 선두가 바람을 뚫어줌으로써 뒤쪽 기러기들은 바람의 저항을 덜 받게 된다. 힘들면 자리를 교대하고 먼 길에 지치지 않도록 소리내어 서로를 격려한다. 인생 여정 또한 그렇다. 혼자 가는 길보다 둘이 함께 하면 덜 힘들다. 주위를 돌아보자. 거친 풍파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만큼 힘든 '외기러기'는 없는지.
김해용(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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