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지역민은 오늘 또 하나의 플래카드를 걷어 내려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650만 서명운동' 플래카드다. 불과 40여 일 전,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되면서 플래카드를 내렸던 그때 그 심정으로 플래카드를 내려 폐기해야만 한다.
플래카드를 내걸 때의 그 비장한 각오와 염원은 온데간데없고 패배자의 심정으로 그것도 연달아 두 번씩이나 플래카드를 걷어치워야 하는 지역민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번에는 서명운동이 제대로 불붙기도 전에 결론이 나버렸다. 어찌 보면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니 위안이 될 만도 하지만 그 초심(初心)은 어디 가서 보상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 후면 또 새로운 플래카드가 올라갈 것이다. 어차피 지역의 기반 산업이 취약하니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유치하기 위해 일단 달려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 아닌가. 어쩌다가 대구'경북이 이토록 구차하게 정책을 구걸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도 숱한 플래카드들이 내걸리게 될 것이고 그것들은 또 별 의미 없이 내려지고 불태워질 것이다.
예부터 경상도 기질을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고 했다. 별 흔들림 없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웬만한 일에 크게 노하지 않는다. 작은 이익을 놓고 철저하게 따지지도 않는다. 그렇다 보니 정이 많다. 문제는 정을 앞세우다 보니 실익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질을 역이용당하고 있는 것인가. 요즘처럼 지역민이 우롱당한 적이 없다. 얼마 전 신공항은 국가 대의를 이유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에 과학벨트는 공약을 지킨 셈이 됐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춘단 말인가. 이것이 건강한 민주주의를 이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해결 방식인가. 사실 이렇게 따질 겨를도 없다. 결론은 나버렸다. 아니 결론을 이미 쥐고 각본에 따라 움직인 셈이다. 이런 '정치적 눈치'도 모르고 우매하게 일을 추진해 온 대구'경북만 '닭 쫓던 개'처럼 우스운 모양새가 된 것이다.
옛말에 "무는 개 돌본다"고 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짖거나 물지 않으면 감시견으로 자격이 없다. 그러나 정이 많은 지역민은 어지간해서 잘 물지 않는다. 이렇게 대구'경북은 정권의 충실한 '애완견'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인가.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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