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구에서 한 교직단체 주최로 유럽의 혁신적인 교육현장을 소개하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3개 나라의 교장들이 저마다 독특한 학교 운영 방식과 교육 철학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 자리에서 스웨덴 출신의 한 교장이 "최근 한국의 KAIST에선 학업 경쟁에 짓눌린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첫 대답이 하도 단호해서 잊히지 않는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삶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Not study for test, but for life.)"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의 역할은 학생들이 저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사 대부분이 이런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철학을 허락하는 그 사회의 분위기가 부럽다. 수업하랴, 야간자율학습 감독하랴, 공문처리 하랴 눈코 뜰 사이 없는 우리의 선생님들,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십수 년째 문제집만 들여다봐야 하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정말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학력 차별이나 빈부격차가 적은 그쪽 나라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싶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실시한 교직 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천700여 명의 교사들에게 '1, 2년 새 교직에 대한 만족도나 사기에 변화가 있나'라고 물었더니 '떨어졌다'는 응답이 79.5%나 됐다. 5명 중 4명꼴이다. 원인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 등의 여파에 따른 학생에 대한 권위상실을 가장 높게 꼽았고, 그 다음으로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 수업 및 잡무 등 직무에 대한 부담 순이었다. 자신의 자식에게 교직을 권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상당수였다. 매우 심각한 징후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최근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스승의 날 행사를 부활시키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자고 부르짖고 있다. 본의 아니게 민원에 연루된 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보험 상품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교직의 실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교직에 대한 교사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데 수준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생에 있어 교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0대의 어느 한 고비에서 어떤 인품을 가진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 나비효과가 된다. 교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교직에는 존경과 동시에 일반인에 비해 더 무거운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책무가 뒤따른다. 이런 점에서 교사는 사설학원의 강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 가는 제자가 딱해 자신의 월급을 쪼갰다는 한 교사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할머니와 홀로 사는 제자가 안쓰러워 꼬박꼬박 용돈을 쥐여준 또 다른 교사의 얘기는 왜 우리가 선생님을 부모와 같이 존경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이제는 교사들도 분발해야 한다. 명문 대학에 몇 명을 합격시켰는가가 다가 아니다. 진정으로 제자의 미래를 걱정해주고 아픔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 교직 실추의 원인이 우리 교직 사회 내부에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교사들이 '나는 선생님이다'라고 당당하게 가슴 펴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진심어린 응원을 보낼 수 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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