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나이 들어가는 오랜 친구와 함께 공연 프로그램을 살피다가, 관람료에 비해서 과분할 정도로 수준 높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연주라면 주저하지 않고 표를 구입한다.
단아하면서도 조금은 멋을 낸 옷을 차려입고 공연시작 한 시간쯤 전에 만나서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천천히 예술회관 주위를 산책하다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공연장 로비를 서성거려 보기도 한다. 무르익은 봄밤의 향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벌써 선율의 날개를 단 듯 가볍고도 흥분된 모습이다. 조용히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지정석을 찾아 앉으면 비로소 음악으로 소통하게 될, 인간의 진실한 내면이 열리는 숨 막히는 순간이 된다.
나에겐 언제나 설렘으로 가슴 뛰게 하는 좀 특별한 장면이 있다. 물론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훌륭한 음악은 감동 그 자체이지만, 지휘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 단원들이 제각각의 악기들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자신만의 악기로 음을 고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렇게 가슴 뭉클할 수가 없다. 그냥 들으면 불협화음일 수가 있겠으나 누군가의 의도적인 간섭(?) 없이, 깊은 시선으로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마음을 전하듯이 음을 불러내고 어루만지고 다듬어주는 것 같지 않은가. 나의 행복한 음악여행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대구 시향 정기연주회 '당신을 위한 세레나데'는 비발디의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단조-화성의 영감-Op.3-10, RV580'과 드보르자크의 '관악기, 첼로와 베이스를 위한 세레나데 D단조, Op.44'를 초연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어주었고, 마지막으로 아홉 명의 콘트라베이스를 비롯한 60여 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나와서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C장조, Op.48'을 훌륭하게 연주해서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그런데 일부 관객이 지인이거나 자신의 교수가 연주자로 입장할 때 휘파람과 괴성에 가까운 환호와 박수를 보내서, 감상하는 데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연주자가 연주에 몰입하는 데도 방해를 하는 일은 유감이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은 악장 수가 3, 4장이기 때문에 다 끝나면 박수를 쳐야 한다. 성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에 2, 3곡씩 묶어놓고 있는데 다 끝났을 때 쳐야 하지만, 국악의 판소리나 민요 등은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 그러나 궁중 음악은 집박(執拍)이 끝을 알릴 때 박수를 친다. 간혹 어느 정도 여음이 사라진 후에 박수를 쳐주었으면 좋으련만 너무 성급한 경우도 있다. 알면서도 흥에 겨운 나머지 지나치는 관람 예절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한층 성숙한 표정의 사람들, 맑게 정화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날 나를 위한 세레나데는 아름다웠다.
강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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