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KTX 열차로 서울로 가다 열차 내 TV에서 일기예보를 보았다. 중부지방에서 먼저 내리기 시작한 비가 내일은 남부지방까지 내려가 전국적으로 비 내리는 주말이 되겠다고 했다. 참 통 큰 일기예보이다. 신기한 일이다. 예보대로라면 이 넓은 지역이 비가 올 때는 항상 같이 오며, 갤 때는 함께 갠다니. 대한민국이 아무리 작다지만 중부니 남부니 후려쳐서 예보하는 것은 너무하다. 적어도 전라남도와 북도, 경상남도와 북도쯤은 나눠 예보하는 것이 기상청 위상에 걸맞고, 고객에 대한 예의다.
복잡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5분 늦었다. 짜증이 난다. KTX 열차가 제 시각에 도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열차 구내방송은 아무 말이 없다. 그 정도 연착은 고객이나 회사 모두 늦은 축에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고속열차가 5분 늦은 것은 '큰일'인데 코레일은 통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말 기상청과 철도청에 근무하는 분은 통이 크다.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쾌속선이 있다. 현해탄을 건너는 데 2시간55분이 걸린다. 풍랑이 심하지 않으면 거의 이 시간이 지켜진다. 처음 이 배를 타보고 무척 놀랐다. 고정된 플랫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렁거리는 바다에 들어온 배가 부두의 시멘트에 뱃머리를 들이대면 정확하게 2시간55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배와 일본 배 모두 시간을 잘 지킨다.
2001년 9월, 44세 된 일본 열차 기관사가 자살했다. 기관사는 열차 도착시간이 50초 늦었다고 3일간 교육을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얼마 뒤 후쿠치야마 선에서 커다란 열차 사고가 일어났다. 곡선구간을 돌던 기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해 선로를 이탈한 것. 탈선 열차는 자동차와 들이받아 승객 49명이 죽고 350명이 다쳤다. 기관사는 23세의 초보. 앞선 역에서 열차를 잘못 세워 8m 더 가는 바람에 다시 올라오느라 1분이 늦었단다. 1분을 만회하려다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열차가 몇 초 늦었다고 승무원을 교육시키는 일본, 그런 실수를 했다고 죽는 일본 사람. 물론 이런 일본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려는 방향에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통 큰 사람들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만큼 무시당하고 착취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사람들은 나의 행복권을 박탈한다. 인간이 통이 커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지극히 세심해야 될 때가 따로 있다. 기상청이나 코레일에 근무하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상대방이 약속된 시간을 5분, 10분 어겨도 화나지 않는지, 약속 장소를 정할 때 막연하게 서울역이나 남산 앞이라고만 해도 관계가 없는지 묻고 싶다.
권영재 보람병원 원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