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가정] ②뇌병변 배성진씨 취업기

입력 2011-05-10 09:53:5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장애, 당당히 인정하고 역할 찾았죠"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배성진(38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배성진(38'뇌병변 1급) 씨는 장애인들에게 항상 "장애를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며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운철기자

"장애를 얻은 뒤 이전에 몰랐던 일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9일 오후 대구 북구 노원동 ㈜포모바일 사무실. 배성진(38'뇌병변 1급) 씨는 자신감이 넘쳤다. 오른쪽 몸이 마비돼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데도 그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을 내밀며 당당하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내비게이션 거치대 제조업체인 이곳에서 설계 도면을 짜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일하기 시작해 이제 갓 1년을 채운 새내기 사원이다. 사무실을 찾은 이날도 배 씨는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스마트폰용 거치대를 설계하느라 분주했다.

배 씨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2002년 4월에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그는 사고 후 곧바로 10년간 일했던 충남 아산시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퇴사했다.

"교통사고 당시 기억이 전혀 없어요. 사고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된 것도 부모님께 들었어요." 그는 꼬박 2년 동안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식구들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었던 2004년 여름, 거짓말처럼 기적이 찾아왔다. 배 씨의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병원 시절 그는 어머니가 부축을 해야 겨우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4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한 끝에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퇴원 후 바깥에 나갈 때마다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TV를 보고, 밥을 먹고 자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공업고를 졸업하고 반도체공장 기계 정비기사로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었다.

"정말 일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위축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쯤 기회가 왔지요."

2008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주최한 '장애인 취업 박람회'에서 배 씨는 대구직업능력개발원 기계과 장애인 훈련생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이후 배 씨는 지난해 지금의 일터인 ㈜포모바일에 채용됐다.

그가 취업을 하자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다. 2남1녀 중 장남인 배 씨를 항상 걱정했던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배 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부모님이 '우리 아들 힘내라!'며 응원을 한다. 어버이날에 부모님 용돈도 두둑하게 챙겨드리며 장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주변인들의 배려도 배 씨에게 큰 힘이 된다.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5명뿐인 이곳에서 그는 설계만 도맡아 하고 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된 그에게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부품 조립은 힘들기 때문에 회사에서 배려를 해준 것. 그는 이곳을 두 번째 직장이 아니라 '첫 직장'이라고 생각으로 일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쓰러져 있을 때 배 씨의 삶에 찾아온 직장이기에, 그의 각오와 생각이 이전과는 180도 다르다. 버스로 1시간 동안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며 회사에 와야 하는데도 출근 시각인 오전 9시보다 30분 일찍 도착한다. 배 씨는 장애 때문에 일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장애는 감춘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당당하게 드러내고 인정할 때 자신과 맞는 직장도 찾을 수 있어요. 그래야 가정도 행복해집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