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지성 스님과 산중대담
부처님오신날. 매년 맞는 기념일이지만 언제부턴가 '달력의 빨간 날'이라는 생각만 자리 잡았다. 불기 2555년. 세월만큼이나 세상도 변하고 변했다. 4일 극락사(칠곡 지천면 창평리)로 향했다. 파란 하늘 아래 목탁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성(71) 스님과 차를 나눴다. 사미계를 받은 이후 올해로 52번째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는 스님이다. 원로 스님과 함께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본다.
"부처님오신날, 참 많이 달라졌죠. 과거 행사는 사찰마다 이뤄진데다 단조로웠죠. 하지만 공휴일이 아니어도 일반인들도 절에 많이 찾아왔죠. 지금보다 여러 면에서 순수했지. 요즘은 행사가 무척 커졌지만 공휴일이라 많은 사람이 절을 찾지 않고 나들이를 떠나죠. 뭔가 순수성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지성 스님은 부처님오신날만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스님은 출가 전에 진주 인근의 한 사찰에 머물렀다. 부처님오신날 불자들로부터 연등을 신청받으면 식권을 주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배가 고프던 시절이라 여기저기서 식권을 좀 구해달라고 사정사정하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못 구해줬죠. 그때의 안타까움과 후회스러움이 매년 초파일 때마다 생각납니다." 당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 못 한 것이 마음에 항상 응어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이라 했다. 부처님은 태어나서 7걸음을 옮기고 이같이 말씀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인간 선언'이자 휴머니즘의 선언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불교를 우상이면서 미신이라고 헐뜯지만 불교는 철저히 신을 부정하고 하늘 위나 아래 인간이 유일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부처님의 메시지는 깨달음이다. 인간의 문제나 본성은 결국 마음인데 이를 알려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부처님 최초의 말씀이자 최후의 말씀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8만4천 가지의 번뇌가 있는데 이는 8만4천 가지의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고 8만4천 가지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지성 스님은 이를 함축하면 결국 '心'(마음 심) 하나가 남는다고 했다. 마음 하나가 인간과 우주 등 모든 진리를 해결한다는 것.
이는 시대가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금 부처님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마음의 문제를 깨달아야 한다고 설파했을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진리는 고금이 없고 삶의 본질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죠. 부처님은 인간의 문제는 3독(탐욕, 화, 어리석음)에서 기인한다고 하셨죠. 이를 버려야 할 나쁜 습관으로 규정한 겁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고 하고 부를 이용해 가난한 사람을 더 억압하려고 하죠."
지성 스님은 불교의 화합정신도 여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불교가 전파된 나라에서는 종교 전쟁이 없었어요. 우리나라도 불교가 산신이나 칠성 같은 토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흡수했잖아요. 불교의 교리가 인과법칙입니다. 모든 것이 혼자 존재하지 않고 같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인드라망'(더불어)이 불교의 또 다른 진리죠." 그러면서 요즘 종교의 세력화와 세속화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종교인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불교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님들이 사회문제에 너무 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풍요롭고 편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죠. 시대에 야합하고 물질에 야합하면 결국 망한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이 시점에서 불교계도 되돌아보고 점검을 해야 합니다. 최근 조계종에서 주창하고 있는 자성과 쇄신 캠페인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것 같아요. 그래야만 일반인들도 불교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성 스님은 "신도든 아니든 부처님오신날에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기 삶은 바른길을 가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에 대해 자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냥 쉬고 노는 것도 좋지만 요즘 같은 자아상실의 시대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것이 지금 시대 부처님오신날의 의미가 아닐까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지성 스님은=1940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58년 동화사에 입산했다. 1959년 동화사에서 혜진 스님을 은사로, 인곡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청송 대전사와 영천 은해사, 용연사, 송림사, 동화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11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냈다. 현재 사단법인 '함께하는 세상'과 보현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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