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알자] 심근경색 (4)예방-가슴 뛰는 삶

입력 2011-05-09 07:44:56

예고되는 심장마비, 가족력·생활습관 보면 알 수 있다

마법사가 수정구슬로 미래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만화나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물론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심장마비에 대해서도 "나는 예외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불안감은 한편으로는 심장마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생긴다. 심장마비에도 이른바 '고위험군'이 있다. '어떤 질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나 '실제 질병이 발생했을 때 사망률이 높아 예후가 나쁜 집단'을 일컫는 말. 이 말은 심장병에도 적용된다. 즉, 심장마비에도 '고위험군'이 존재하며, 이것이 질병을 내다보는 수정구슬인 셈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토요일 오후, 응급실로 환자가 들이닥쳤다. 가슴통증으로 쓰러진 김재범(60·가명) 씨. 대개 가슴통증 환자는 갑작스레 응급실로 오다보니 보호자가 없거나 밤 늦은 시간에 온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 한복을 차려입은 보호자들이 환자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날은 김 씨의 환갑 잔치가 열리던 날로, 함께 저녁을 먹던 중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중소기업 대표인 그는 일 때문에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다. 최근 거래처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해서 줄담배도 피웠다. 아니나 다를 까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 고지혈증에다 당뇨 전단계 진단까지 받았다. 약도 꾸준히 먹고 담배도 끊기로 약속했다. 담배를 멀리 한 지 한 달. 환갑 잔치 분위기에 젖은 그는 술잔이 돌자 담배에도 다시 손을 댔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일어선 그는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의 아버지는 환갑을 얼마 앞 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터. 아버지 생각에 두 눈에 눈물이 흐르면서 이내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미어진 가슴이 풀릴 때쯤 가슴통증이 밀려왔다. '곧 좋아지겠지'하며 노래를 계속 했지만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마에 식은 땀이 맺히고 어지럼증이 들면서 마치 체한 듯 속이 울렁거렸다. 양팔을 들어 어딘가를 잡고 싶었지만 어깨와 팔에 통증이 밀려와 잡고 있던 마이크를 놓치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진단 결과는 급성 심근경색증. 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은 혈전 때문에 완전히 막혔다가 조금 뚫린 상태였다. 혈전제거 시술을 받고,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철망)을 넣고 나서야 가슴통증은 사라졌다. 아찔한 고비를 넘긴 것.

◆동맥 경화증의 위험인자, 심근 경색증을 예언 하는 수정 구슬

심장마비는 대부분 급성 심근경색증 때문. 그리고 급성 심근경색증의 주요 원인이 바로 동맥경화증이다. 동맥경화증은 동맥혈관 내벽에 기름찌꺼기(콜레스테롤)가 끼면서 혈관이 딱딱해지고 너비가 좁아져 피흐름이 막히는 질환이다.

놀라운 것은 10~20대부터 이미 동맥경화증은 시작된다는 것. 하지만 동맥경화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급성 심근경색증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동맥경화증이 진행해서 혈전이 쉽게 생기는 불안정한 상황을 만드는 위험인자 때문이다. 위험인자를 잘 관리하면 동맥경화가 있어도 혈전이 생기지 않고 심근경색도 오지 않는다. 위험인자는 '교정할 수 없는 위험인자'와 '교정할 수 있는 위험인자'로 크게 나뉜다. 전자에는 '고령, 남자, 심장병 가족력'이 해당되고, 후자에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흡연, 운동 부족' 등이 있다. 심근경색증 위험도는 바로 이들 위험인자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심근경색증의 90%가 위험인자와 관련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들 환자의 35%는 김재범 씨처럼 심장병 가족력이 있다. 이들은 가족력이 없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증 발생위험이 약 1.5~2배 높다. 만약 가족 중에 남자 55세, 여자 65세 이전에 심장병을 앓은 병력이 있다면 가족력을 의심해야 한다. 본인도 남자 45세, 여자 55세 이후엔 그만큼 위험성이 커진다.

아울러 흡연자는 2배, 고혈압은 3배, 고지혈증은 4배 위험도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흡연자가 고혈압과 고지혈증도 있다면 16배나 동맥경화가 잘 생기고 그에 따라 심근경색증 발병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결국 동맥경화증의 위험인자가 심근경색증의 발병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마법사의 수정구슬'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수정구슬을 들여보지 않는다는 것.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이 으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운동과 좋은 식습관을 가지면 심장병 사망을 무려 7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식습관, 적절한 운동 및 체중 유지가 예방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흡연자들에게 금연을 권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반응은 "평생 피워온 담배. 이제 와서 끊는다고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히 도움이 된다. 간접흡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심근경색증 위험은 흡연량에 비례해 증가한다. 금연 후 일년이 지나면 심장뿐 아니라 뇌혈관 질환 위험이 절반으로 낮아진다.

정기 검진으로 동맥경화증의 위험인자가 있는지 미리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혈압을 정기적으로 재고, 콜레스테롤 및 혈당 수치를 알기 위해 혈액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미래의 심근경색증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길이다.

이미 심근경색증을 경험한 환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건강한 생활 습관을 되찾고 혈압, 콜레스테롤, 당뇨병을 찾아내서 관리하는 것이 너무 때 늦은 것일까? 아니다. 심근 경색증을 경험한 환자일수록 언제든지 다시 재발해서 심장마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부터라도 동맥경화증의 위험인자들의 찾아내고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심근경색증을 경험한 환자 중 일부는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술이나 담배는커녕 지나친 운동도 부담스럽다. 대인관계가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제기능을 못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사실 필요 이상의 불안이나 공포는 건강 회복에 장애가 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 제공=대구경북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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