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19) 포기와 굴복

입력 2011-05-07 07:55:00

그대, 용기있는 포기 당당함이 아름답다

영차영차! 5월이다. 누구나 행복해야 하는 달이다. 줄다리기 하는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예전엔
영차영차! 5월이다. 누구나 행복해야 하는 달이다. 줄다리기 하는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예전엔 '봄 소풍', '가을 운동회'였는데 요즘은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일부러 토요일에 운동회를 하는 학교도 늘었다. 일에 쫓기는 부모들이 한 명이라도 더 오게 하려는 생각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따로 정해둬야 할 만큼 세상살이가 팍팍해졌고, 가족끼리 모이기도 힘들어졌다. 그저 함께 모이기만 해도 즐거운, 그래서 마냥 행복한 아이들. 지금 아이들이 힘껏 당기는 것은 밧줄이 아니라 부모의 관심일지도 모른다. 사진=신운섭(제55회 매일전국어린이가족공모전 입선), 글=김수용기자
행복은
행복은 '김밥 꼬투리'다. 아이의 소풍날이면 아내는 김밥을 싸느라 난리다. 소위 '1천냥'김밥도 있지만 단무지 하나만 들었다한들 어디 아내의 그것에 견주겠는가! (사실 너무 속 보이는 말이긴 하지만) 김밥 한 줄에 오직 두 개만 나오는 '꼬투리!'. 썰다보면 김밥의 구조상 밥알의 비율보다 속재료가 많아서 김밥의 진정한(?) 맛을 보여주는 그 꼬투리! 특히 조금 큰 꼬투리를 입에 넣는 행복이라니. 글/일러스트 = 고민석 komindol@msnet.co.kr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여러 일화를 남겼다. 특히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식에서 명연설을 기대하며 숨 죽이고 기다리는 졸업생과 청중들에게 "포기하지 말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라는 극히 짧은 축사를 남긴 것은 꽤나 유명하다.

이 일화는 책에서 책으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극적인 효과까지 보태져 그럴싸하게 윤색됐다. 최근 미국 타임지에서 '졸업식 10대 명연설'을 선정했는데 5위에 처칠의 연설이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의아스런 부분이 있다.

타임지 기사에는 졸업 축사를 한 학교가 옥스퍼드대가 아니라 '해로스쿨'(Harrow School)이라는 사립 중등학교로 표시돼 있다. 1571년 개교한 명문 학교로, 런던에 위치해 있으며, 처칠도 이 곳 졸업생이다. 내용도 조금 다르다.

'포기하지 말라'를 'Never(또는 Don't) give up'으로 옮겼지만 실제로 처질은 'Never give in'이라고 말했다. 처칠이 남긴 연설문 전체 내용은 이렇다. "절대 굴복하지 말라. 절대, 절대로-그 어떤 것에도, 크거나 작거나, 대단하거나 사소하거나, 결코 굴복하지 말라. 다만 명예와 분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give in'은 '항복(굴복)하다' 또는 '(마지못해) 동의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give up'에도 '항복'이란 의미는 있지만 '포기' 또는 '단념'이라는 뜻이 강하다.

'굴복'과 '포기'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 사전에선 굴복은 '힘이 모자라서 복종함'이고, 포기는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으로 나와있다. 스무 번 가까이 입사 원서를 냈다가 마침내 취업에 성공한 김진영(28) 씨는 두 단어의 차이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김 씨는 해외 봉사활동도 했고, 영어 성적이나 학점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수없이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죠. 지방대라는 간판 때문에 제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회사라면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대기업 취업은 포기했습니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한 때 그는 '오기가 생겨서' 대기업에 꼭 들어가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행해졌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능력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길을 바꿨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 보다 떳떳할 수 있는 다른 길(중소기업)이 있기에 그리로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선택에서 옳고 그름은 없다. 당당함과 비굴함이 있을 뿐.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물이자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앤드류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다. '행복의 비결은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유난히 자살률도 높고 행복 만족도도 낮은 대한민국. 그 저변에 포기하는 사람을 패배자로 낙인 찍고, 포기 그 자체를 죄악시 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은 아닐까? '깨끗한 포기'는 다음 기회를 위한 탄탄한 발판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전제 조건이 따른다. '최선을 다할 것.' 처칠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가 아니라 '절대 굴복하지 말라'고 했다. 포기는 '다음 기회를 찾겠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고, 굴복은 '난 도저히 안돼! 주저앉겠어'라고 스스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포기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굴복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사회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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