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통장에 돈 있잖아요. 이젠 폐지 그만 줍고 좀 쉬세요"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장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보내 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 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최주원(대구 동구 불로동)
♥ "집에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세요"
푸르름이 넘실대고,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5월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오늘도 어린 조카들과 씨름하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그동안 몸 건강히 잘 계셨는지요. 늘 염려하고 계시는 어머니 덕분에 저희 가족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세월이 너무 빠른 것 같지요. 벌써 어머니 연세도 일흔이 넘으셨고, 저도 어느새 쉰을 넘겼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지나간 세월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농촌 생활이었기에 저와 친구들은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소꼴을 뜯고, 소죽을 끓이며 부모님의 일손을 돕느라 쉴 틈이 없었지요. 그랬던 친구들이 어느덧 중년이 되어 옛일을 회상하며 산을 오르니,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고향이신 양의골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하셨지요. 우리 식구가 벽돌을 쌓아가며 몸소 지은 집으로 어머니께서 들어가신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곳에 가면 따뜻한 물을 받아 백반증 때문에 마음 놓고 목욕탕에 가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시원하게 목욕시켜 드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곧 그런 날이 오겠지요. 어머니, 5월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대구에서 큰 딸 올림.
김귀분(대구 중구 남산3동)
♥어머니 허리 완쾌돼 무엇보다 기뻐
어머니는 서른 번의 설을 쇠도록 신장에 돌망태를 달고 사셨다. 삼십 중반 때 가족의 부주의로 누워 있는 허리에 호박이 떨어져 다쳤다. 그 후 무거운 돌을 달고 있는 느낌이라며 허리를 움켜잡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셨다. 병원에 가니 '담'이라며 고칠 수 없다고 했단다. 한 차례의 오진을 믿고 오랜 세월을 침과 뜸, 나쁜 사혈 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재바르고 현명한 도시 사람이 아니라 그러했겠지만 가족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이 어머니의 젊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흐르는 세월의 더께를 따라 고통의 두께와 횟수도 불어났다. 이순을 지나고도 한참 후에 어머니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신장결석이라는 진단을 받고 신장을 열었다. 큰 줄기 돌 하나에 석류알처럼 반짝이는 검붉은 돌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허리가 아픈 것이 담이라며 고칠 수 없다고 오진한 의사의 말을 믿고 빈대에게 혹사당한 반추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 앞에 아둔했던 지난 일을 한탄했다.
몸에 결석이 있다는 것이 어느만큼의 고통인가를 느꼈던 때가 있다. 시골에서 살던 젊은 시절, 갑자기 배를 칼로 오려내듯이 심한 통증이 왔다. 택시에 몸을 싣고 칠십 리를 달려 읍내 병원으로 갔다. 요로 결석인 것 같다며 진통제 주사를 놓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한번에도 파김치가 되었는데, 두터운 세월에 혹독한 아픔을 묵묵히 감내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몸속에서 뼈들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종교가 없던 지난시절 부처님과 하느님을 모두 찾으며 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나에게 옮겨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었다.
늦었지만 너무나 감사하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만 믿었던 어머니의 허리가 완쾌된 것을 생각하면 꿈을 꾸듯 신기하고 흐뭇한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고왔던 심신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연로하신 껍데기만을 남겨두신 구순의 어머니! 힘든 삶의 마디를 넘기면서 육남매를 무던히 길러내신 어머니께 어버이날을 맞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번 어버이날은 이 편지로 효도를 대신할까 합니다. 오늘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용인시의 하늘 아래를 바라보며 두 팔 크게 벌리고 어머니를 안아봅니다."
김익(대구 남구 대명3동)
♥"우리 엄마는 철인이자 백과사전"
어머니, 5월이에요. 길거리와 온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당신이 제게 심어주신 마음 때문이겠죠. 매일매일 불러도 지겹지 않은 단어. 엄마! 하루에 한번이라도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궁금해지는 것도 그렇지만 전화를 걸면 "그래, 그래, 건강하제!" 하시며 좋아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힘이 불끈 나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반평생을 강아지 같은 다섯 자매를 위해 낮에는 남의 집 품앗이를 하시고 밤에는 달빛 아래 밭에 나가 우리 밭일을 하시던, 잠을 자다 깨어보며 엄마가 사라지는 이유를 어린 나이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엄마가 철인인 줄 알았습니다. 한번도 아프다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어느 날부터 어머닌 거뜬히 들어올리던 쌀 포대기를 낑낑거리며 힘들어하셨고,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 수가 검은 머리카락보다 많아진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가 되어야 엄마를 알 수 있다고 했나요? 그러나 아직도 당신이 주신 사랑에 비교한다면 철부지 애송이일 뿐입니다. 아직도 삶의 지혜를 찾기 위해 당신께 전화를 해 여쭤보면 당신은 백과사전같이 척척 답을 주시곤 하죠.
어머니! 당신이 주신 사랑만큼은 못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주신 사랑과 지혜는 평생 제 가슴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항상 제 곁에서 인생의 빛이 되어 주신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육신 멀쩡한데 놀면 뭐하노"
엄마! 어제는 황사가 심하다고 바깥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 보도에도 난 대구스타디움 가족한마음걷기대회에 갔어요. 이른 시간이었는데 대공원역 버스정류장에는 스타디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참 부지런한 사람 많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도착한 광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함께 온 어르신께 마스크를 끼워주고 선크림을 얼굴에 발라주고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말라고 당부하는 애틋함이 감동으로 밀려와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얼굴이 그려지더군요.
시골 출신인 엄마는 도심 생활을 적응 못해 공원 벤치에 나와 있다가 발견한 고물을 모으며 자식 모르게 고물장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폐지 가져가라는 이웃집 전화에 방안 가득 짜증 섞인 언성만 채워놓고 돌아설 때면 "육신이 멀쩡한데 놀긴 왜 놀아, 누구네 집 할마니도 억억 하는 부자, 누구 할배도 억억 하는 부자라 놀아도 되지만 건강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면서 엄마도 건강을 위해 하는 거라고. 그렇게 고물장수가 되어버렸지요.
2011년도 새해 첫날 세배를 한 우리한테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시면서 통장을 꺼내 찾아 쓰라고 하셨지요.
무슨 통장? 물음표을 달고 통장을 펼쳤는데 '폐○○○'란 말에 울컥하니 눈시울이 뜨거워 아무 말도 못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마음을 다스리고 나와 통장을 들여다보니 3천원, 2천100원 등등 최고로 많이 저축한 것이 6천500원. 엄마 노고까지 고스란히 저축되어 있는 폐지 판 통장을 만지기도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저희들도 잘 살고 있으니 엄마 자신을 위해 투자하시면서 건강 챙기시고 폐지 그만 주우시면 안 될까요? 언제나 가슴 따뜻한 우리 엄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기일날 뵙겠습니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