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유나바머(unabomber)를 기억하며

입력 2011-05-04 07:35:46

"컴퓨터 때문에 큰일이야." 며칠 전 사무실을 찾아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아들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에 빠져 산다는 고민이었다. 주말이면 아예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밤을 새우는 것은 다반사고 평일에도 밤이 늦도록 인터넷에 빠져 늦잠을 자는 통에 아침이면 아이를 깨우는 아내의 고함으로 늘 집안이 엉망이라는 걱정이었다.

결혼이란 걸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고 아내가 있을 리는 더욱 만무한데도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가 안쓰러웠지만 가히 그 고통을 안다고 위로를 해 줄 수도 없으니 더 난감한 노릇이었다. 해서 애꿎은 커피 잔만 매만지다가 변명처럼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본명보다도 유나바머로 더 알려진 그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버클리대 수학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몬태나주의 산골 오두막집에서 일체의 문명을 거부하면서 1978년부터 17여 년간 우편물 폭탄으로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불합리하게도 우편물 폭탄 테러로 그가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것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이었다. 19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논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는 "추악한 기술사회에서 사상을 잃느니 사상을 지키다 죽는 것이 낫다"고 선언한다. 결국 동생의 제보에 따라 체포되어 유죄 판결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 중이지만 그가 세상에 던진 화두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세상은 소통 부재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소통의 부재는 인터넷이라는 혁신적 기술의 발달을 통해 소통의 만능이라는 가면을 쓰고 배설의 욕망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기술은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을 달고 더욱더 속도전을 내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사회를 또 다른 계급적 차별과 억압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해서 어쩌면 유나바머는 지적 원천인 대학교수들과 그 결실의 대표인 항공사들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를 부정한 그의 논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폭력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이야기는 해 봤어" "누구랑 뭘" 의미 없는 물음과 답이 서로를 겉돈다. 치열했던 대학시절의 눈빛 대신에 흐릿해진 눈으로 서로를 위로할 시간도 없이 이미 삶의 근거가 되어버린 휴대폰의 문자를 우리는 서글프게 확인하고 있다.

전태흥(미래티엔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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