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다. 이 시기가 되면 왠지 나조차 마음이 설레고 내가 청년이라도 된 듯 젊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의 청소년기는 마냥 희망차고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대학진학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였고, 혈기왕성하던 시절 사법시험에서는 3차에서 떨어지는 기막힌 현실 앞에 큰 절망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학창시절과 수험시절 내내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에 시달렸다.
청소년기를 떠올리다 보면 대입 재수를 시작했던 그해 2월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진 서울 생활은 외로웠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설움으로 눈물을 쏟기도 했다. 3월 말이 되자 함께 하숙하던 친구들이 모두 고향을 다녀오겠다고 떠났다. 하지만 나는 어둡고 한기가 느껴지는 하숙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그때는 차비를 쓰는 것조차 허영으로 느껴질 만큼 죄책감에 시달렸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약한 마음을 부모님께 들킬 것 같아서 고향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어엿한 대학생이 되지 못해서 마을사람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어느 대학을 다니느냐고 물어올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다녀온 친구들에게서 고향의 풀내음과 젖은 흙냄새가 나는 듯 했다. 나는 아마도 깊은 향수병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마고우였던 한 친구가 시무룩해진 나에게 어머니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머니는 나의 소식을 물으시며 자기를 뒤따라 동대구역까지 나오셨다고 했다. 꼬깃꼬깃 접은 용돈을 손에 쥐어주시며 기차를 타러 총총히 사라지자 눈물을 훔치시더라고도 했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지낸 그 친구의 감성이 남다른 탓도 있지만, 아들은 못 보더라도 아들친구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 하신 어머니의 사랑에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때처럼 휑하고 엄마가 그리웠던 적은 없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지극했던 어머니의 정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자식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 하는 것이 오로지 부모의 마음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 체면과 수치에만 몰두하고 있느라, 꿈속에서라도 자식을 만나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친구가 그 당시 전해준 어머니의 눈물과 무언의 사랑은 앞으로도 내가 겪게 될 어려운 순간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 시간에도 크고 작은 실패를 겪고 상심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들이 실패를 부끄러워하거나 그로 인한 자책감에 빠져들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늘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었으면 한다.
이석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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