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엄마의 경전

입력 2011-05-02 07:01:28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라 멈칫한 적이 있다. 거울 속에는 어머니가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피곤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눈매가 아래로 살포시 처지고, 꽤 넓어진 이마에 희끗한 머리칼, 그러나 아직도 야무진 입매는 언젠가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보았던 그 모습이 영락없다.

어느 아침 방송에서 중년 여성을 상대로 '내가 엄마처럼 살고 있을 때'를 인터뷰했는데, '남편, 자식을 먼저 생각하느라 본인은 뒷전일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엄마 같을 때' '남편에게 바가지 긁을 때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익숙함이 있을 때' '식구들이 남긴 음식을 혼자 먹을 때' '물건 값을 깎으려 기를 쓰는 나를 볼 때' 등의 순서였다.

내 어머니는 성경 속의 어느 한 구절이나 격언으로 자식들에게 훈계하기를 좋아하셨다. 하지만 딸들이 결혼할 무렵이던가, 놀랍게도 살아오신 당신의 경전 속으로 우릴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가령, '창공을 나는 새는 하늘을 보지만, 벌레는 땅을 기어갈 수밖에 없단다'거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아라, 가지가 많아야 이슬도 많은 법이다', 또 어떨 때는 '고운 명주일수록 주름이 잘 가니 그 주름 귀하게 여겨라' 등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결혼 전 날밤, 엄마는 내 어깨를 다독여주시며 세 가지 부호에 대해서 꽤 진지하고도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하셨다.

어린 아이 시절에는 물음표(?)를 심어줘야 하는데,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매사에 질문을 하면서 머리도 좋아지고, 지적 욕구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자랄 때는 느낌표(!)를 많이 갖도록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항시 부모에게 불만이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고 범죄에 약하다는 지론이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종지부(.)를 잘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하시는 말씀이 차롓걸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리고 남에게 큰 폐 안 끼치고 미련 없이 하느님 품으로 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 하셨다. 생각할수록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다.

조기교육을 왜 시키는가. 두뇌는 열 살 전에 이미 90%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소박한 아름다움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요즘의 청소년들이 무서운 아이들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쿨하게 마침표를 찍으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최고의 복일 터. 팔십 평생의 경전을 가지신 어머니의 도. 해마다 오월은 고백성사로부터 시작되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강 문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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