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논술 톺아보기] 듣고 읽어야 주장할 수 있다-주장과 논거①

입력 2011-04-26 07:27:45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항상 내 속에서 다툼을 벌인다.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현재에 관해서이고, 해야 할 말은 미래와 결부되어 있다. 지금부터는 논술문 쓰기의 구체적인 방향과 함께 주장과 논거를 제시하는 방법을 말해야 하는데 현재 하고 싶은 말들이 자꾸만 해야 할 말을 가로막는다.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교육 현장의 풍경과 결부되어 있다. 자꾸만 어긋나는 말들이 말 자체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어쩌면 바로 그 자리에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교섭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제시했던 논술(論述)이란 말 자체의 의미이다.

논술(論述)은 '논(論)'과 '술(述)'로 이루어진 낱말이라고 했다. 더 나아간다면 먼저 '논'하고 뒤에 '술'하라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것을 논술 수업에 사용되는 용어로 대치한다면 주장과 논거이다. 논술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주장과 논거를 적절하게 제시하는 과정이다.

'MBC100분토론', 'KBS심야토론',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다소 관심이 멀어졌지만 정치 토론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참가한 텔레비전 정책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심각한 정치적인 이슈보다도 참가한 사람들의 본질이 먼저 들여다보였다. 그러한 본질은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몇몇 교수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본질은 대부분 주장만 존재하고 그 주장을 타당하게 만드는 근거가 없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토론자들은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주장이나 근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아가 상대방을 자극하고 비방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토론의 본질은 말하기가 아니라 오히려 듣기이다. 제대로 들어야 말할 수 있다. 듣지 않고 하는 말은 자신만의 언어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토론자의 기본적 자질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제대로 된 토론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비고사와 본고사,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을 필요로 하는 대학입시에 대비한 왜곡된 학교 교육 과정 탓이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글로 표현하면 논술이 된다. 논술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그러한 주장에는 의외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되어 있다. 왜 그럴까?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논술은 제시문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은 나아갈 방향이나 근거를 지니지 못한 공허한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제시문에는 그 글을 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 생각은 주장을 펼치기 위한 토대이자 근거가 된다. 제시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술에 있어 내가 대화를 나누는 가장 일차적인 대상은 기본적으로 제시문이다. 제시문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이다. 제시문과의 대화에 실패한 논술문은 이미 실패한 논술문이다. 설사 아주 매력적인 주장을 펼친다고 해도 그 주장은 기본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근거가 없으면 말은 설득의 힘을 잃어버린다.

다시 '논술(論述)'이란 말로 돌아가자. 논술의 의미가 먼저 '논'하고 뒤에 '술'하라는 것이지만 '논'이 '술'보다 반드시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술'이 지닌 힘이 없으면 '논'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술'에 지닌 근거가 약하면 '논'은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는 정치인의 말과 같다는 뜻이다.

논술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설득할 수 없는 주장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나아가 설득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건 이미 본질적인 설득이 아니다. 따라서 논술은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행위이지만 단순한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논술은 대립을 통해 승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통해 더욱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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