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TV에 소개되거나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가면 일단 줄부터 서게 마련이다. 대기 번호표를 주는 곳도 있다. 순서가 돼 용케 북새통 속에서 식사를 하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시설은 탓할 바도 못 되고 친절은 더더욱 기대하지 못한다. 오히려 '욕쟁이 할머니'한테 욕이나 얻어먹기 일쑤다. 정작 중요한 음식의 맛과 질은 시원찮더라도 그저 유명한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보상이 되고, 돈을 주고 욕을 먹어도 밥상에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워한다. 그런데도 그런 집은 그럴수록 계속 유명해지고 손님들은 무작정 줄을 잇는다.
지난해쯤인가 어느 평가기관에서 어떤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략 2천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가장 많은 사람의 응답이 '유명한 의사'였다. 2등을 차지한 것은 '실력 있는 의사'였고, 3등은 '인자한 의사'였다. 내용에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있다. 1, 2등을 합쳐서 절반을 훨씬 넘겼고, 3등은 10여%를 차지했을 뿐이었다.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좁은 소견으로 '인자한 의사'나 '실력 있는 의사' '친절한 의사'는 순서야 어떻든 1, 2, 3등을 차지할 것이고, '유명한 의사'는 훌륭한 의사로서의 덕목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결과는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예약이 밀리고 환자들이 줄을 잇는 의사들 중에도 동료 의사들조차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TV 맛집'과 '욕쟁이 할머니'가 생각났다. 결국 설문조사의 결과는 '맛있는 집'과 '친절한 집'도 '이름난 집'에는 한참 뒤진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유명한 의사 중에 인자하면서 실력이 있는 의사도 있고, 마찬가지로 소문난 맛집 중에 정말 맛있고 친절한 집도 있다. 다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저 소문만 무성할 뿐인 집인데도 손님들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줄을 서는 불가사의한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이름난 맛집의 논리가 의사에게도 적용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어쩐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솔직히 말해 어떤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지 나도 딱히 알맞은 대답을 찾기가 어렵다. 병원의 환자 중에 늘 장래 희망이 '훌륭한 의사'라고 말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하루는 주치의가 병실에서 "넌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며? 그래, 네가 존경하는 훌륭한 의사는 누구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또렷한 목소리로 주저없이 말했다. "안중근 의사요!"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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