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나비 무사/리우

입력 2011-04-22 07:02:40

리우/미디어 설치작가
리우/미디어 설치작가

서기 2800년 (디지트 원년 후 500년), 지구는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가상과 실재가 구분되지 않는 '증강현실'로 변화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넷에 연결된 채 평생을 살아가며, 인체의 부분을 기계로 교체한 사이보그와 로봇의체들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티베트 고원지대는 출입이 통제된 'N.T'구역이다. '나'는 3D멥 디자이너이자 솜씨 좋은 프로그래머인데, 휴가 중 N.T구역에 불시착하여 '오맨'(Original Man)을 만나게 되고, 지하도서관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책을 통해 2천300년 디지털 빅뱅 이전의 인류의 역사가 완전히 왜곡되었음을 알게 된다. 도대체 누가 N.T구역을 설정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인류의 역사를 왜곡한 것일까?

2300년 빅뱅 이후 모든 사람이 연결된 인터넷 공간에 폭주하는 정보들을 관리하기 위해 인류는 '디월드'(D-World)라는 통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러나 인류의 뇌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게 된 디월드는 빅뱅 이전의 인류가 쌓아온 영적, 지적 성과물인 책을 모두 파기하고, 순간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대다수의 인간과, 집요하게 자신의 욕망만을 좇아가는 '엑스맨'(X-Man)으로 인류는 양분된다.

한편, 디지털 빅뱅 이전부터 책과 아날로그적 가치를 보존해오던 비밀단체가 있었으니, 그 사람들이 바로 오맨이었고, N.T구역에 불시착하면서 나는 마지막 오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맨으로부터 전자장치의 도움 없이, 그리고 넷에 연결되지 않은 채 맨몸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과, 동서양의 고전과 아날로그적 정신을 나는 물려받는다. 또 지하도서관에서 우연히 2000년경에 쓰여진 '나비'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된 나는 조선시대의 도인인 '전우치'가 우화등선한 후 사이버 공간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디월드의 공격으로 마침내 오맨은 사망하고, 남아있던 책들마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살아남은 나는 오맨으로 다시 태어나고, 사이버 공간에서 전우치를 찾아내 함께 디월드에 대항한다. 우여곡절 끝에 뇌만 남은 인간병기 사이보그인 '예브'를 제압하고 마침내 디월드에 접근한 오맨과 전우치. 그러나 디월드는 하나의 유도프로그램일 뿐, 인간들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욕망과 왜곡된 정보에 의해 디지털 빅뱅 이후의 세상이 탄생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오맨과 전우치, 그리고 디월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소녀 사이보그 예브는 넷과 증강현실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엑스맨에 대항하고, 무기력하고 디지털화 된 인류에게 영성과 아날로그적 인간애를 일깨우기 위한 길고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리우/미디어 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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