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흑산도 홍어

입력 2011-04-21 14:04:44

홍어 먹기는 연습에 달려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영어회화를 능숙하게 잘하는 미국 사람은 없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자전거도 수영도 반복해서 연습하지 않고 잘 타거나 헤엄을 잘 칠 수 없다.

오장육부를 확 뒤집어 놓는 삭힌 홍어 역시 먹는 연습을 해야 그 오묘한 맛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홍어의 고향은 흑산도다. 흑산도는 지금도 홍어잡이 전초기지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는 이곳 어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옛날에는 흑산도에서도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었다. 홍어는 가오리나 간재미와 별 차이가 없는 홍어목에 속하는 평범한 사촌지간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잡힌 고기가 몽땅 거름이 될 뻔한 지독한 해탈과정을 겪은 후에 오늘의 귀족으로 변신했다.

고려 말 왜구의 침범이 빈번해 지자 조정에선 궁여지책으로 남해의 섬을 통째로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했다. 이곳 사람들은 섬을 떠날 때 잡아 둔 홍어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 배에 싣고 나주 영산포 쪽으로 달렸다.

배 밑바닥 물 칸에 채워져 있던 홍어들은 열흘이 넘게 걸리는 항해 도중에 썩기 시작했다. 흑산도 사람들이 썩은 홍어를 어떻게 먹어볼 엄두를 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추측건대 몬도가네식 음식을 잘 먹는 어떤 노인네가 버리기 아까운 홍어 살점 한 칼을 날된장에 꾹 찍어 먹었는데도 배탈이 나지 않는 것을 보고 너도 나도 조금씩 맛보기로 먹기 시작한 것이 효시가 아니었을까. 사실 홍어가 숙성될 때 풍기는 냄새는 스웨덴의 청어를 발효시킨 수르스트뢰밍 다음으로 지독하며 홍어 후임이 동남아의 두리안이란 과일이 아닐까 싶다.

남도여행을 슬슬 다니면서 홍어를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이 나도 모르게 '절친'사이로 변해 버렸다. 처음에는 어릴 적에 맛이 간 돔배기를 먹는 것처럼 지독한 웨한 냄새 때문에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나쁜 짓도 자주 저지르다 보면 버릇이 되듯 농축된 역한 냄새도 자주 가까이 접하다 보면 중독이 되는 모양이다. 이젠 그 중독 증세가 환희에 가까운 환락이 되었다. 작가 황석영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인체의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 바로 그것이었다.

흑산도 사람들은 근해에서 잡히는 국산 홍어만 판다. 칠레로 대표되는 수입 홍어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존심이다. 5, 6년 전에 동창 내외 10여 명이 홍도, 흑산도 여행에 나선 적이 있다. 홍어를 포식할 욕심으로 홍도 숙박 계획을 흑산도로 밀어붙였다. 이날 경매에 나온 홍어는 13마리였는데 모두 중개인의 손을 거쳐 서울로 팔려 나갔다.

수소문 끝에 어느 슈퍼마켓에 있는 숙성된 홍어 한 마리를 14만원에 살 수 있었다. 우린 민박집 주인이 쳐준 홍어회를 그날 밤에 술안주로 몽땅 먹어버렸다. 냄새가 싫다며 돌아앉은 부인네들은 다음날 아침 "밤새 그걸 다 먹어치웠냐"며 깜짝 놀란다. 그것도 모자라 남도 여행을 오랜 세월 동안 함께 다녔던 친구와 아침산책을 핑계로 대폿집에 들러 홍탁 삼합으로 해장을 한 후 흑산도를 떠나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홍어가 눈에 밟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홍어회를 좋아한다. 회뿐 아니라 탕과 애국도 좋아한다. 강도 있게 숙성된 홍어를 입안에 넣으면 에너지는 코로 튀어 나온다. 증기기관차가 출발할 때 응축된 스팀이 한꺼번에 분출되듯 "푸와하"하고 튀어나오는 감당할 수 없는 그 기운을 혼자서 몰래 즐긴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원시 부족들이 환각성분의 야생 감자가루를 대롱을 통해 코로 불어 넣으며 자지러지는 쾌감을 즐기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나희덕의 시 한 편 읽는다.

"봄에는/ 홍어 내장으로 보릿국을 끓이고/ 여름에는/ 개불이나 하모 같은 갯것에 입을 대고/ 가을에는/ 석쇠 위에 전어를 굽고/ 겨울에는/ 매생이국을 후후 불며 떠 넣는다./ 낯선 음식에 길들여지는 동안에도/ 사람에 대한 입맛은 까다로워져/ 마음의 끼니를 거르는 날이 늘어간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