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은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라 내걸린 문구처럼 피비린내 나는 스릴러이지만 실상은 피눈물이 밴 여성잔혹사이기도 하다. 여섯 가구에 아홉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외딴 섬은 겉으로는 무척 아름답고 한가롭기조차 하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고슴도치 방관자로 살아가기에도 지쳐버린 서울의 해원에게는 그저 달콤한 도피처로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마침 폭행당한 여성의 목격자가 된 그녀는, 이 과정에서 신원이 노출되고 가해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참이기도 했다. 쫓기듯 찾아간 평화로운 섬의 뒷모습은 더 한층 벌거벗은 폭력의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인 복남은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받고, 시동생에게 수시로 강간당하며 짐승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정을 뻔히 아는 시어머니를 비롯해 이웃의 누구 하나 친절하지 못한, 가해자와 방관자들로 둘러싸인 생지옥이다.
애오라지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던 딸의 죽음, 그 앞에서 어미의 본성이 되살아나면서 영화는 돌연 복수 활극으로 탈바꿈하며 엽기적인 피바다를 이룬다. 그러나 섬뜩한 피비린내나 단말마적인 비명보다는 복남의 말라버린 눈물과 신음소리에 더 귀가 기울여진다. "넌 너무 불친절해…." 어린 시절 애꿎은 폭력의 현장에서 혼자만 남겨놓고 달아나버리던 아픈 기억도, 딸아이의 최소한 삶이라도 부탁하며 애걸복걸 매달리던 손길을 뿌리치던 싸늘한 표정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피멍울이 든 채 죽어가는 딸의 마지막 모습조차 외면하고서 돌아서는 친구의 등짝을 바라보는 마음은 너무 아프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숨조차 쉴 수가 없다. 피바람을 몰고 왔던 광란의 낫질도 잦아든 침묵 너머로 '옛날에 금잔디'의 화사한 가락만 잘게 부서지면서 눈이 부시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단다. 폭력과 무심함으로 짜인 불친절한 거미줄에 날개를 찢긴 나비의 몸부림은, 마침내 온 동산을 피로 물들이는 처절한 쓰나미를 몰고 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위로가 비록 무망한 희망으로만 그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는 소중하다.
방관자적인 불친절함이 문득 엄청난 광풍을 몰고 오듯이, 아주 사소한 친절함이 뜻밖의 훈풍으로 피어난다는 믿음이나 깨달음 또한 소중하리라.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고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문수동자의 게송에서) 향기로운 꽃잎이 분분하게 흩날리는 날, 아름답고도 오묘한 봄날은 또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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