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마음의 길로 행복이 어느새 내곁에…
사람들은 곧잘 이런 말을 합니다. "그때가 살기는 어려웠어도 참 사람답게 살았는데…." 단칸방에 모여 네 식구가 나란히 다리를 뻗고 살 때도, 단출한 저녁 밥상이 올라올 때도, 휴가철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 갈 때도 참 사람답게 살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살던 때였습니다. 불평하고 비교하고 좌절하는 대신 감사하고 칭찬하고 희망을 품었습니다.
굳이 '행복'을 연습하고 공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줄 알았기 때문이죠. 독자이며 매일신문 시민기자로 활동 중인 권동진(52) 씨는 그런 행복을 체험했습니다.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마라톤 마니아입니다. 2000년 마라톤을 시작해 2004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완주, 2007년 한반도 횡단(308㎞), 2010년 철인3종 올림픽 코스를 2차례 완주했습니다. 지금껏 마라톤을 80차례나 완주했답니다. 사하라사막을 마라톤으로 완주하고 싶다는 그에게 처음 행복 이야기를 부탁했을 때 글재주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사실 그는 2008년 한국 수필로 등단한 어엿한 수필가입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나의 처제
아내는 나와 동향(同鄕)이다. 산굽이를 돌면 옹기종기 이웃한 벽촌에 살았으니 서로의 처지를 손금 보 듯 잘 아는지라 감출 것 없이 혼인이 이루어졌다.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다. 대현동 주택가 2층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처제와 함께 기거를 하게 되었다. 육남매 중 넷째인 처제는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힘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당시 거처가 마땅치 않았다. 아내는 동생 처지를 잘 알지만 갓 신혼살림을 차린 터라, 망설임끝에 처제에게 방 한 칸을 내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원래 심성이 고운 처제는 행여 형부에게 누가 될까 봐 마음을 졸이며 사는 듯했다. 주일이면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교회에서 종일을 보내고 저녁 늦게 귀가했다. 형부로서 처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배려보다는 다소의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살아온 듯하다. 지천명이 된 지금도 아둔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아무튼 처제는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해 각고의 노력으로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당시 처제도, 신랑될 총각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마음은 물질적으로 보탬을 주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나는 궁리 끝에 신용카드를 처제에게 주면서 필요한 것을 할부로 사라고 했다. 처제는 신랑의 양복을 샀다. 동서는 결혼 후 그 양복을 낡도록 입고 다녔다. 그런 동서도 자기 막내 처제가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구할 때까지 데리고 살았다. 형편이 어려워도 마음만은 넉넉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지금 40대 중반인 내 동서는 중소기업 이사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는 업무차 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내가 한번도 아내에게 선물해보지 못한 립스틱을 선물하기도 하고, 귀한 것이 있으면 늘 우리 부부를 먼저 챙긴다. 처제 또한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으며 우리에게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말하지 않아도 그 따뜻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지나간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폭설과 구제역,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일본의 천재지변 속에서도 얼었던 동토가 풀리고 봄꽃들이 경쟁하듯 다투어 피어난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어느 순간 행복이 내 곁에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행복은 거창한 것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봄 햇살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따사로운 마음의 길로 오는 것이리라.
권동진(열린큰병원 물리치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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