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자유인' 류승범과 영화 이야기

입력 2011-04-14 14:09:42

그는 혼자였다. 대개 연예인 하면 그 주위로 2, 3명이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기 십상인데 배우 류승범은 홀로 인터뷰를 위해 나타났다. 4월의 어느 햇살 좋은 날, '바람 불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는 유하 시인의 말이 딱 들어맞을 그런 날, 류승범과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제가 무지 골초예요. 담배 정말 많이 피웁니다. 작년에 한 3개월 정도 끊었는데, 금단 현상 때문에 정신적 상실감이 커져서 사람이 날카로워지더라고요. 전자담배도 시도해 봤는데, 안 통하던데요."(웃음)

그는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아니 입에 물기 전에 기자에게 '피워도 되겠냐'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아니 그 또 전에 사실 '골초'라고 밝힌 그의 수중에는 담배가 없었다.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이 '그 때문이었겠구나'란 생각을 나중에 했을 정도였다. 그는 홍보사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다. 사실 이런 일이 일반인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겠지만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또는 얼굴만 비치면 다 알 만한 연기자인 류승범이었다는 점에 '의외'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인간 류승범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요?(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1분 정도 숨고르기를 한 후 말을 이었다) 정말 모르겠는데요. 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점점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주 큰 사춘기를 매번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는 제 자신에 대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게 되더라고요. 제 자신을 잘 모르겠으니까 저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 모습이 진짜 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것이겠죠."

그는 '모른다'는 표현을 여러 번 했다. 하기는 돌이켜보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마다 '나'를 확인하면서 인생을 알아가는 것일테다. 류승범은 그런 면에서 그의 말대로 큰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 청소년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는 오랜 연인이자 동료이기도 한 공효진의 존재는 남다르다. 한 번의 헤어짐도 있었지만 그만큼 더 사랑이 단단해졌다. 비슷한 형식으로 물었다. "연인 류승범은 어떤 남자친구인가요?"

"(그는 '하하하'라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있는 그대로 갑니다. 부족한 부분 다 드러내고, 자기감정에 충실하게 연애를 하죠. 연애가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둘의 공통적인 생각이에요. 사람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좋자고 하는 사랑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자친구로서 멋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다 던지는 투명한 남자친구죠."

'투명한 남자친구'란 표현이 참 신선했다. 사실 인간관계에 있어 자신의 모든 모습을 다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류승범의 이런 연애관은 참 멋스러워 보였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 한 가지는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진지한 사고를 한다는 '진실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비치는 그는 매번 뒷골목 양아치 같은 분위기가 강했지만, 실생활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런 점이 그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그의 연기관도 궁금했다. "배우 류승범은 어떤 연기자인가요?"

"배우 류승범과 인간 류승범의 경계를 많이 두지 않아요. 그것을 지금은 분리시키기보다 더 좁히려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가진 고민 역시 연기를 하면서 그 작업 활동 이후에도 연장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도 대중이나 관객들은 그런 면에서 인간 류승범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부를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은 배우이기에 앞서 인간 류승범도 함께 사랑해주신다고 보면 됩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배우들은 한 작품을 마치고나서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와 실제의 나를 분리시키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류승범은 그 경계를 오히려 좁히려 하고 있다는 얘기는 새로웠다. 그래서 한마디 더 물었다. "실제 류승범에게도 양아치의 모습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럼요. 제 안에 분명 양아치적인 모습이 있죠. 저는 상류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아마도 그런 모습은 환경이 만든 저의 큰 일부일 것입니다. 여전히 마이너틱한 감성이나 생각이 저를 아우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제게 분명 있습니다."

'역시 천상 배우구나'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진지의 늪'으로 기자를 초대했다. 그 묘한 매력 탓에 기자가 끌려들어간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사실 이번에 류승범과 인터뷰가 이뤄진 이유는 14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고객들'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야구왕을 꿈꾸다 업계 최고의 안하무인 보험왕으로 거듭난 배병우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필모그라피를 봤을 때 조금 의아한 선택이다. 솔직히 휴먼코미디 장르와 류승범은 썩 어울리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지가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이들과 소통하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겼죠. 장르적 접근이 휴먼코미디라 걱정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위로의 악수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럼 그가 짚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혼란스럽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아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터라 더욱 궁금했다.

"제가 원래 어떤 일이 있으면 굉장히 신중을 기하는 성격이라 그날도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머릿속에서 급하게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었어요. 제 솔직한 마음은 모든 영화의 감상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배우나 감독이 어떤 '포인트'를 던지면 오히려 다르게 느낄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 관객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고 내드리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 아닐까요."

류승범은 자신의 배우관도 연애관도 그리고 인생관에, 영화 감상 영역까지 모든 것에 있어 자유로웠다. '자유인'이란 호칭을 붙여도 무방할 만큼. 그래서 그의 연기가 우리 주위의 누군가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맞다. 주위를 둘러보면 혹시 아나. 류승범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벽을 싫어하니까. '자유인' 류승범이니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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