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때인가 TV를 돌리다가 딱 보기에도 촌스럽고 어색한 일반인이 유명 연예인에게 심각한 욕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어찌 사람 면전에다 대고 저렇게 심한 말을. 이른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얼마 전에는 국민가수 김건모가 수척한 얼굴로 TV에 나와 역력히 긴장한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다. 원래 꼴찌는 탈락해야 되는데, 국민가수 김건모가 믿을 수 없게도 꼴찌를 하는 바람에 PD와 동료들이 술렁였고, 당황한 제작진은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줬던가 보다. 이에 프로그램은 네티즌과 시청자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최근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은 TV를 켤 때마다 보일 정도로 과도한 붐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케이블방송을 통해 모델, 디자이너 등의 분야에서만 간간이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방송에서 가수, 연기자, 아나운서, 오페라 등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잡고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이미 유명해진 연예인들도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인기는 아마도 공개적 오디션이라는 평가를 통해 실력과 노력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하는 좋은 사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케이블의 슈퍼스타K는 환경미화원 어머니를 둔 서인국과 중졸 학력의 환풍기 수리공인 허각이 최종 우승했다는 점에서 마치 '공정의 승리'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현실 사회가 그만큼 공정하지 못하다는 데에서 기인한 대리만족과 그로 인한 희열이다.
매 경쟁마다 느껴지는 생생한 긴장감과 참여자들의 열정, 노력은 보는 이의 가슴도 설레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참여자들의 도전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들의 성공과 탈락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현실인 양 빠져드는 묘미가 있다. 전문 연예인들이 나와 시시껄렁한 대화로 시간을 죽이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미있고 긴박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재미에도 불구하고, TV를 돌릴 때마다 나오는 서바이벌 행태는 어느 순간 마주하기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재미있지만 불편한 진실이 유사한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더욱 강하게 어필된다. 나만 그런 것일까.
우후죽순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기획되지만, 그때마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몰리는 현실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등을 하면 수억 원의 상금과 상품으로 단번에 인생을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취업이 힘든,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가리는 포장지 같다. 꼴찌를 하면 더 이상 변명할 기회도, 볼 이유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사실은 경쟁에서 도태된 자는 어떠한 불이익에도 침묵하라는 무언의 압박 같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서바이벌 세계에서는 사치이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선행에 의해서만 가능한 비굴한 기회이다. '경쟁'이 당연하고 익숙한 현실도 그러하다. 일등에게 몰아주기보다는 작지만 모두 함께 나누자고 하는 것이 마치 능력 없는 자들의 푸념 같아 말하기가 부끄러워진다. 누군가의 독설에 상처받는 자아도 측은하다. 아무리 멘티로서 능력 향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설령 심사위원의 독설이 애정에 기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받을 심리적 충격과 자극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노력해 온 전문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순간의 경쟁에서 탈락하고 겪게 될 자존감 추락과 자신감 상실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 영혼이 안쓰럽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는 살아남은 자에게 열광하지만, 어찌 보면 탈락자나 탈락위기에 있는 자가 우리일지도 모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내면에 어떠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줄 기회조차 박탈한 채 타인과의 경쟁에 이기고 지느냐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경쟁의 무대가 너무 다이내믹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서보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결국 재도전의 기회도 없이 절대적 나의 가치를 보일 시간도 없이 매순간 탈락하는 자들이 더 많다는 현실, 이것이 재미있지만 불편한 진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성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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