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해외뉴스는 이탈리아의 한 콩쿠르에서 한국 성악가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한 낭보를 전해왔다. 그렇지만, 사실 콩쿠르 소식은 세계 도처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어 별다른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음악이 강세다. 유독 가무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민족의 예술 DNA가 21세기에 접어들어 활짝 꽃을 피우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처럼 탁월한 우리의 예술 재능을 어떻게 하면 더욱 지속성장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금의환향해도 당장 설 무대조차 없다면 금메달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무대를 제공하고 라이브 감각을 살리면 프로 예술가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 예술은 유학이 전부가 아니라 시장 개척이 관건이다.
새로운 예술 환경을 조성하고 아티스트의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극장의 책임이 막중하다. 어떤 경우든 예술시장이 살려면 소비자인 관객 기반이 튼튼해야 시장이 위축되지 않고 활성화될 수 있다.
어떻게 관객을 만들 것인가. 전국에 200여 개가 넘는 대'소극장이 있지만 우리는 가까운 일본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객 기반이 취약하다.
초대권이 아닌 매표로 극장 운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극장들이 첫 번째 해야 할 과제다. 왜 관객 기반이 바르게 정착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원인을 찾아보면 소비자인 청중의 입장에선, 클래식이 어렵다, 티켓 가격이 비싸다, 문턱이 높아 낯설게 느껴진다는 반응에 귀기울여야 한다.
청중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소통하기 위해 해설음악회를 하거나 오전 11시 콘서트처럼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밝아 보인다.
6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필자가 해설하며 진행한 '우리 오페라 우리 아리아 갈라 콘서트'도 오페라 대중화의 일환이다.
오페라 활성화와 창작의 방향성을 찾고 관객을 늘리려는 시도였다. 관객의 반응 또한 뜨겁고 놀랐다는 반응들이었다. 사실 주인공의 이름도 낯설고 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서양오페라에 비하면 잘만 만들면, 우리말에다 훤히 아는 내용이어서 관객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였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간의 창작품을 솎아내고 극장이 중심이 되어 걸러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누적된 우리 오페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수입문화구조에서 수출구조로의 전환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예술인들의 마인드 개선이 필요하다.
이형근 오페라하우스 관장은 인사말에서 "모든 분야에서 세계 경쟁력을 확보한 우리나라가 오페라 분야에서만 국민이 아는 창작 레퍼토리가 없다는 게 부끄럽고 자괴감이 느껴진다"며 이를 위한 재원 확보가 시급함을 토로했다. 한국음악가로서,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로서 정체성의 문제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 음악가들이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좋은 오페라의 성공적인 모델이 있다면 적극 지원하고 키워야 한다. 수입 뮤지컬, 수입 오페라가 아니라 이제는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우리 작품이 있어야 한다. 음악가들의 정체성 찾기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반드시 피해가 나타난다. 가난하고 헐벗었던 시절, 문화 궁핍일 때 유학을 가서 배웠던 시절에서 이제는 우리 자체만으로도 배우고 가르치고 생산해 낼 수 있을 만큼 환경이 바뀌었다.
아무리 서양 기술을 배워왔다지만 속까지 바꿔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국가브랜드의 과제이기 전에 예술가 스스로가 우리 예술을 살리기 위해서 정체성 찾기에 나섰으면 한다.
생각을 바꾸면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이미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우리 성악가들이 교두보다. 정체성을 찾기만 한다면 새 패러다임의 시장 구축이 되지 않겠는가.
탁계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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