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부드러움과 관우의 지혜 겸비
내가 교직에서 명예퇴직하고 경북대학교 정문 근처의 살던 집을 재건축하여 남헌서실을 낸 지 얼마 안되어서였다. 하루는 경산에 사업체를 가진 사장님 한 분이 남헌서실로 찾아왔다. "글씨 좀 배우고 싶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외모로 보아 서예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서실에는 대개 교직에 몸담았다 퇴직한 분들이 찾아 오기 때문이다.
이 분이 구산 정희수 사장이다. 경산에서 매일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며칠 왔다가는 그만두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서실에 출근하였고,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구산은 서예에도 이미 일가견을 가졌고 내가 별로 지도할 처지도 아니었다. 10여 년을 하루같이 서실에 드나들다 보니 가족처럼 친해졌고, 오히려 내가 구산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구산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분으로 서예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지리 등 무불통지였다. 구산은 대구사범학교와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출신이다. 한때 교사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고향인 경산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돈도 꽤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도 잘하고 한문, 음악, 스포츠도 만능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그의 글씨 좀 봐주고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도리어 배우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고마운 친구가 제 발로 서실에 찾아왔으니 나는 참으로 늦복이 많은 인생이다. 양주동, 이은상 선생이 한국에서 대표적인 박학다식한 천재라고 알고 있었는데 구산이 그런 분이다.
5년 전, 나의 친구 김원중 교수의 아들이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을 때 아버지 친구 몇 분을 초청한다기에 김 교수와 나는 구산을 권유하여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처음 가 보는 먼 러시아 여행이라 김 교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스크바 등을 일주일 동안 여행하면서 현지 가이드보다 구산에게 들었던 지식이 더 깊고 넓었다.
사진도 전부 구산이 찍었고 가이드의 역할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언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 왔는지 우리 일행은 놀랐다. 그후 나는 중국, 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구산과 함께 갔었다.
구산은 주변에 감동을 주는 헌신적인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았는데 사귈수록 관운장 같고 유비같이 부드럽고 제갈량같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노년에 이런 친구 가졌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서예가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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