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큰 섬유 특히 '휘청'…기업 "1,060원이 마지노선"
원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2009년 3월 1,570원을 넘어섰던 환율이 올 들어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4일 기준 1,080원 선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고환율에 수출경쟁력을 확보했던 기업들은 환율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그동안 부진을 딛고 도약을 시작한 섬유업계를 비롯해 자동차 부품 등 대구경북 대표 업종들도 '원화 강세'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환율 '1,060' 수출 마지노선
성서산업단지에서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2) 대표의 하루 일과는 '환율 점검'으로 시작된다.
며칠 전 원/달러 환율이 1천원대로 주저앉으면서 기업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원화가 강세장을 이어가면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과거에는 매출의 5%가량은 이익으로 돌아왔으나, 요즘은 이익률이 고작 2, 3%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지역 수출업체들은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중동 사태 등 국내외 정세로 촉발된 고유가'고물가'고금리의 3중고에 빠진데다 환율마저 떨어져 수출업체들이 힘겨워하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원/달러 환율은 1,150원에서 1,250원선.
하지만 1,100원 아래로 내려가면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고 '1,060원'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섬유산업의 경우 가격 변동에 따른 영향이 매우 큰 탓에 환율하락은 곧바로 기업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등을 한 해 3천만달러어치 수출하는 한 섬유업체는 "최근 급락세를 타고 있는 원/달러 환율 때문에 손실이 크다"며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3천만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그저 환율이 더 떨어지지 않기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섬유업체 대표는 "그나마 중국의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강세를 보여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망도 얼어붙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최근 지역에 소재한 수출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EBSI) 조사' 결과 2분기 지역 EBSI지수는 103.4로 집계됐다.
기준치인 100보다는 높아 경기 부진보다는 호조를 전망하는 업체가 많지만 1분기 EBSI지수가 107.3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증가폭이 감소했다.
고난의 행군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물가 잡기의 한 방법으로 원화 강세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오랫동안 철옹성 같았던 환율이 1,100원을 뚫고 내려간 만큼 시장 심리가 추가 하락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상공회의소 임경호 조사부장은 "환율 하락 폭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수출 중심의 지역 산업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지역 기업들은 가격경쟁력 향상을 통해 수출을 확대하기보다는 차별화된 신기술, 신제품 개발을 통한 비가격 경쟁력 향상을 통해 수출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이동복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기업들은 원화 강세에 따른 단기적인 위험을 회피할 대책을 강구하면서도, 생산성 개선 등 기업의 근본적 체질을 바꿔줘야 '원화 강세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원화 강세 이어질까
고삐 풀린 환율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달러 강세를 유지하던 환경이 급변한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1,050원 선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상도 내놓고 있다.
우선 국내 주식 시장 활황과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고 금리 인상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은 국내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5원 내린 1,086.6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080원대로 내려선 것은 2008년 9월 8일(1,081.40원) 이후 처음이다. 지난 연말 종가가 1,134.8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0일 만에 무려 48.2원 급락한 것이다.
이날도 코스피지수가 약보합권에서 등락하면서 숨고르기 양상을 나타냈지만 외국인 주식 순매수가 확인된 점 역시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 뉴욕연방은행 총재의 양적 팽창 지지 발언 등으로 글로벌 달러가 약세를 이어간 것도 환율 하락을 부추겼다.
특히 물가 상승 우려로 정부가 사실상 환율 개입에 나서지 않는 것도 원화 강세 원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5%에 이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원화가치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으며 이미 시장은 원화가치 상승의 시기조절만 남았다고 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증시의 추가적인 상승 가능성과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수 기조 지속 전망으로 금주에도 환율은 추가 하락할 전망"이라며 "상반기 중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환율이 1,050~1,060원선에서 바닥점을 찍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의 수출이 줄어 실적이 악화되고 환차익이 감소하면 외국 투자자가 국내에서 돈을 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비슷한 제품으로 다투고 있는 일본 엔화는 원화와는 반대로 약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 기업 수출에 걸림돌로 분석되고 있다. 대지진 직후 달러당 76엔까지 내려가며 초강세를 보였던 엔/달러 환율은 84엔까지 회복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수출입업체와 외환딜러 모두 1,080원을 심리적인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며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가 주춤해지고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환율도 상승세로 전환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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