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1)통합우승의 전주곡 된 1984년 KS 악몽

입력 2011-04-05 07:32:17

7차전 롯데에 역전패…우승(?)축하연 눈물바다

1985년 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 선수단.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5년 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 선수단.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전기리그 우승 기념식에서 김영덕 감독과 이상희 대구시장, 이종기 삼성 라이온즈 사장, 천보성(왼쪽부터) 선수가 우승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삼성은 그 해 후기리그를 롯데에 넘겨준 뒤 한국시리즈에서 3승4패로 패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전기리그 우승 기념식에서 김영덕 감독과 이상희 대구시장, 이종기 삼성 라이온즈 사장, 천보성(왼쪽부터) 선수가 우승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삼성은 그 해 후기리그를 롯데에 넘겨준 뒤 한국시리즈에서 3승4패로 패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프로야구가 올해 30년을 맞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한 삼성 라이온즈는 단 한 차례 연고지 이전이나 팀명 변경 없이 한국 야구의 역사를 써왔다. 대구를 연고지로 삼은 삼성 라이온즈은 대기업의 든든한 후원 아래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을 탄생시키며 프로야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전대미문의 전'후기 통합우승(1985년), 7전8기 끝에 이뤄낸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2년 연속 챔피언 등극(2005년, 2006년)까지 삼성은 늘 정상을 넘보는 실력으로 '명문구단'의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지난 29년간 삼성이 밟아온 길은 영광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다. 땀과 열정으로 늘 도전했고 최고의 순간을 맞기까지 흘린 눈물도 많았다. 삼성이 지난 29년간 팬들에게 전한 감동과 희열, 좌절의 순간 속으로 매주 한 차례 들어가 본다.

(1) 통합우승의 전주곡 된 1984년 KS 악몽

1984년 10월 9일 서울 잠실야구장.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은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 자이언츠와 운명을 건 한국시리즈(KS) 7차전을 치렀다. 마운드에는 시리즈에서 3승씩을 거둔 삼성 김일융과 롯데 최동원이 올랐다. 6회 3대1로 앞선 삼성의 오대석이 최동원의 4번째 공을 강타, 왼쪽 담장을 넘기면서 '승리의 여신'은 삼성에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 시각, 서울 삼정호텔에서는 대규모 축하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사실 축하연은 시리즈 5차전(10월 6일)부터 시작됐다. 5차전에서 2대2로 맞선 7회 정현발의 홈런으로 승리를 챙긴 삼성이 3승2패로 앞서자 샴페인을 터뜨릴 준비에 나선 것이다.

6차전에서 비록 1대6으로 패했지만 최종전의 상황은 삼성에 유리하게 흘렀다. 롯데 선발 최동원은 하루를 쉰 반면 삼성 김일융은 이틀을 쉰 덕분에 힘이 넘쳤다. 김일융의 커브는 예리한 각을 자랑했다. 하지만 7회 4대3으로 추격당한 삼성은 운명의 8회를 맞았다. 모든 걸 뒤집는 대형 사건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8회 1사 후 롯데는 김용희와 김용철의 연속 안타로 동점,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7회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김일융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일한 위안거리는 6차전까지 17타수 1안타에 그친 유두열이 타석에 들어선 것. 7차전에서 7회 시리즈 첫 안타를 터뜨렸지만 2회 병살타, 4회 삼진으로 물러난 유두열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김일융이 던진 3구는 낮게 깔렸다. 순간 방망이가 돌았고 공과 방망이의 마찰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을 좌익수 홍승규가 쫓았지만, 더 이상은 쫓지 말라는 듯 담장 너머에 떨어지고 말았다. 4대6, 역전 스리런. 삼성 프런트는 급하게 삼정호텔로 전화를 걸었지만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치울 수는 없었다. 관중석에서는 "아 대한민국"이 울려 퍼졌지만 삼성 선수들의 귀에는 한 구절도 들리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파란 유니폼의 팬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은 한숨 소리만 들렸다.

우승 축하연은 눈물바다가 됐다. 챔피언 삼성을 알리는 플래카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지만, 젓가락으로 집는 선수는 없었다.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가 뭘 하는지 볼 수 없었다. 맥주만 마셨던 것 같다"고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홍승규 대구MBC 야구해설위원은 "어떤 음식이 차려졌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김영덕) 감독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고 했다.

후기리그 막판 '져주기 파문'을 일으키며 거머쥐고자 했던 우승 트로피를 엉뚱하게 롯데에 넘겨준 김영덕 감독과 화려한 개인기록으로 라인업을 채웠던 스타 선수들은 그날 결코 잊을 수 없는 각오를 저마다 가슴 속에 새겼다. 그것은 설욕의 다짐이기도 했고, 자존심을 버리고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먹었던 초심으로의 회귀이기도 했다. 김영덕 감독은 팀을 곧바로 추슬러 1985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김시진, 장효조, 홍승규 등은 열흘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망주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일본 전지훈련은 최근 프로팀들이 시즌 뒤 휴식 대신 유망주 발굴 및 전력 재정비를 위해 떠나는 마무리훈련의 전신과 같았다. 그해 겨울 선수들은 쉬지 못하고 운동만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각오도 새로웠다. 비록 운명이 어긋난 한국시리즈 7차전이었지만 그날 삼성은 화려한 옷을 벗어 던지고 처음으로 '야수' 사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발톱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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