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백지화 이렇게 본다] 수도권 중심주의가 날려버린 '영남의 꿈'

입력 2011-04-01 09:41:47

김형기(경북대 교수회 의장)
김형기(경북대 교수회 의장)

정부와 여당이 동남권(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동남권 신공항이 정부의 주장처럼 경제성이 없고 국가예산을 크게 낭비하며 엄청난 국가 부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면 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영남권 전문가와 주민을 설득해 조기에 백지화시키지 않았던가.

이명박 대통령 공약 사항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기정 사실화 해놓고 경남 밀양 하남들과 부산 가덕도 해상 중 하나를 선정할 것처럼 평가단을 구성하고 작업을 해놓고도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려는 저급한 연극이었단 말인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영남경제권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간의 균형발전을 실현하며 국민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

인천공항에 이은 제2관문 공항으로서 동남권 신공항은 국가균형발전 실현과 지역경쟁력 강화 논리에 따라 요구된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는 국가안보상 비상사태 때 북한 코밑에 있는 인천공항의 대체공항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논리에 따른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물론 경제성도 신공항 건설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공항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은 초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져서 적자를 보더라도 민간의 거래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높여주기 위해 국가가 대규모로 투자하는 것이다.

그동안 신공항의 기능성과 경제성에 관한 문제제기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신공항을 백지화시킬 만큼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경제성 문제를 따질 때도 건설 초기의 단기적 경제성을 보면 안 되고 신공항 건설로 인한 영남지역 경제 활성화가 국제공항 이용도를 높여서 공항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장기적 경제성을 중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동남권 신공항은 왜 백지화되었을까? 그것은 경제성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영남권을 비롯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무시하는 수도권 중심 사고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동남권 신공항 불필요론과 백지화 주장의 바탕에 깔려 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지역경제 경쟁력의 핵심 중의 하나가 세계시장과의 근접성이고 그 근접성을 좌우하는 것이 국제공항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살고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부 관료, 전문가 등은 이러한 상식을 지방에 대해서는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지방 이익이 아니라 수도권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영남지역이 오랜 기간 한나라당의 정치적 독점지역이었다는 사실이 신공항 백지화를 초래한 또 다른 배경적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한나라당에 맹목적으로 몰표를 주는 획일적이고 낙후된 정치문화로 인한 정치적 경쟁의 부재가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정부 정책 결정자들의 영남지역 무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영남지역에서 여야가 비슷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면서 서로 경쟁해 왔다고 한다면 이번처럼 대통령 공약을 쉽게 뒤집고 지역 주민을 기만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와 영남지역에서의 한나라당의 정치적 독점이 날려버린 동남권 신공항 사태 속에서 지역 주민들은 분노하고 절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수도권 중심주의와 특정 정당의 정치적 독점을 깨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중앙정치가 지방을 농단하는 것을 막고 지역에서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 지역에 일터와 삶터를 두고 진정하게 지역주민의 이익을 대변할 새로운 지역 리더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시민적 실천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백지화로 상처받은 영남지역 주민의 명예회복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형기(경북대 교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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