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최고 의사

입력 2011-03-29 07:18:05

일전에 쓴 기사 때문에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적이 있다. 한 개인의원 원장을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당시 기사 제목이 '국내 최고 수준 수술 못하면 언제든지 그만둔다'였다. 위원회 측은 '상업적 보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며 주의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책상 위 공문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이후 많은 의사들을 만나면서 이른바 '베스트 닥터', 즉 최고 의사를 두고 왈가왈부했다. 대화의 요지는 '과연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는 그만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는 말에 "요즘 워낙 의료 광고를 통해 '호객 행위'를 하다 보니 그저 환자 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왔고, "외과의 경우 수술 성공률이 높은 의사가 최고 아니냐"는 말에는 "어려운 수술은 떠넘기고 쉬운 것만 하면 성공률은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누군가 반박했다.

"해외 저명 학술지에 인용도가 높은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의사가 최고"라는 말에 "명색이 대학병원 의사이자 교수라는 사람이 무엇보다 우선인 환자 진료와 교육은 등한시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만 쓰면 되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최고 의사'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의료 정보(특히 의사 정보)에 대한 시장의 불균형이 워낙 심하다는 데서 시작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자기 아들이 발이 아파 동료 교수에게 보냈더니 오히려 악화돼서 다른 병원에 보낸 일이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의사조차 어떤 의사를 믿고 맡겨야 할지 모르는데 일반 환자는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싶어서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최고 의사'(사실은 믿을 만한 의사)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들은 예외 없이 그런 기준과 세부 진료과목별 의사 목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감했다. 과연 누가 어떤 질병을 잘 치료하고, 치료 실적은 어떠하며, 최신 치료법을 습득하고 있는지, 외과의 경우 수술 실적은 좋은지 공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이다. 기자가 대화를 나누는 의사에게 같은 진료과목의 다른 의사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분이 꽤 잘한다고 소문났던데"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이런 답이 돌아온다. "그 사람은 소문과는 다르다던데…."

그러면서 '~카더라' 통신을 인용해서 그 의사의 서툰 치료 솜씨와 불친절한 환자 응대를 이야기하며, 급기야 동료 의사들과의 불화까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정보'(?)를 기자에게 주면서 상대 의사의 진료 실적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그런 작자는 안돼" 정도에 그친다.

물론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의 기준을 마련하기란 극히 어렵다. 자동차 대리점이나 정비업체도 아닌데 그게 쉬울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 환자들은 정보를 원한다. 대학에선 교수 평가를 하고, 초'중등 학교도 교원 평가를 한다. 왜 의사 평가는 안하는가? 의료기관 평가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울 대형병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고 의사'로 대접받아선 안 된다. '메디 시티'를 지향하는 대구에서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하면 안될까? 진료를 제대로 못하는 의사를 찾아내서 환자의 발길을 끊게 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스타 의사'를 키우는 것도 전체적인 지역 의료 수준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김수용(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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