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집단주의 기질? 성숙한 시민의식?

입력 2011-03-26 08:00:00

迷惑を 掛けるな.(메이와쿠오 가케루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

'메이와쿠 가케루나'(迷惑を 掛けるな).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일본말이다. 일본인에게 뿌리깊게 밴 이 정신은 3'11 지진 대재앙 앞에서도 성숙한 질서의식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세계의 톱뉴스는 물론 지진 대재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또 다른 기사의 한 축은 아이티의 대지진 때 약탈과 파괴 등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던 것과 대조되는 일본인의 절제된 인내와 뭉치는 힘에 관한 것이다. 물 한 통을 얻기 위해 한 줄로 길게 늘어선 모습, 텅 빈 편의점임에도 몰래 물건을 가져가는 이가 없는 풍경, 원자로 폭발을 막기 위해 원전으로 몰려드는 구국자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내 남편을 보내주는 아내의 마음 등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들조차 경이롭고 숭고하게 보도할 정도다.

해외여행이나 이민 생활 중에도 일본인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으로 유학을 온 일본 교환 학생들과 기숙사나 하숙집에서 룸메이트 생활을 해보면 극도로 절제된 생활과 상대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행동이나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본인의 전반적인 기질을 보고 무섭다고 여기는 이들도 적잖다. 일본식 군국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적진으로 가 자살 공격을 감행한 특공대 가미카제를 떠올리게 하는 것. 국가를 위해서는 내 목숨 하나쯤은 주저 없이 던질 수 있다는 의식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두려운 집단의식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일본인의 기질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일본의 기질에 대한 찬반 양론

일본 대지진은 전 세계의 이슈가 되면서 이웃나라인 대한민국 역시 일본의 소식이 헤드라인 뉴스로 도배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일본인의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대재앙 앞에 일본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일본인의 이런 정신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한다.

'날개의 모험 같은 내일을 꿈꾸며'라는 제목의 블로그 운영자는 '메이와쿠 문화로 보는 일본의 대지진'이라는 글을 통해, "대지진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우동 10그릇의 구호품을 뒷사람에게 양보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침착함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일본의 국민성과 '이래서 선진국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고 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메이와쿠 가케루나'는 좋은 안줏거리가 되고 있다. 식사나 술자리에 삼삼오오 모이면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대한 감상과 의견들이 오간다. 대구웅변협회 김태현 사무총장은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대적 감정만 가질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좀 더 인류애적 입장에서 다가서면 좋은 이웃나라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인 계명대 이성환 교수는 "일본인의 이번 모습에 대해 '진화된 인류'라는 평가를 내린 파이낸셜타임스의 극찬에 동의한다"며 "대지진의 혼란'참상과 대비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이들의 문화와 정신세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여전히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잖다. 직장인 권성민(35) 씨는 이번 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위기가 닥치면 우리나라도 일치단결한다. 일본 문화를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너무 높게 평가할 필요가 없다"며 "재앙의 폐해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일본인들의 인내와 질서의식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자

'일본인, 그들 속엔 뭐가 있나?' 이번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새삼 일본인들의 기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봇물 이루듯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 전문가들은 언론의 칼럼과 취재 조언을 통해 일본의 정신을 알리느라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일본 관련 서적들도 서점가의 인기도서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연구서의 대표적인 서적은 '국화와 칼'이다. 미국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국무부로부터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고 내놓은 결과물로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저서다. 저자는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극단적 형태의 일본 문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 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등으로 나눠서 글을 썼다. 이번 대지진과 관련된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사회적 행위를 지배하는 도덕체계로 '은혜, 보은'을 제시했는데, 일본 열도를 방사능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현장으로 달려간 퇴직한 원전 직원의 행동에는 국가에 대한 은혜,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자연스레 나온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일본인론에 관한 명저다. '국화와 칼'이 서구의 관점에서 쓴 일본론이라면, 이 책은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 정교하게 일본 문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도 '축소지향'으로 설명한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일본문화사'는 일본 중세사 전문가인 미국의 역사학자 폴 발리가 쓴 일본문화 전반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모노노아와레(사물이나 사건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 사비(쓸쓸함) 등 일본의 미적 감수성을 풀어내고 있다.

'일본 정신의 풍경'을 쓴 한양대 박규태 일본언어문화학 교수는 "일본인은 미의식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정서적으로 끈끈히 얽혀 있는데 그런 것이 위기상황에서도 자기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일본 미의식의 중심적 정조인 무상감은 슬픔이나 고통을 안으로 삼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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