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문고 도약 '제2창학'…각지서 입학생 몰려들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격동기, 청도 지역에도 교육인구의 증가와 교육열이 한껏 고조됐다. 이에 지역 유지들이 중학교 설립 기성회를 결성하고, 당대 최고의 부자 관재(寬齋) 김경곤(金景坤) 선생을 찾았다. 유지들이 학교 설립 취지를 설명하자 관재 선생은 "육영사업은 군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학교 운영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면 어려움이 많을 터이니 내가 단독으로 설립하겠소."
이후 관재 선생은 육영사업을 위해 만석 재산을 쾌척했다. 그는 돈이 없어 대구의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상교육을 계획하고, 오십만여 평의 전답을 학교재단 수익용으로 기부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토지개혁으로 받은 지가증권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폭락해 관재 선생의 무상교육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올해 개교 64주년을 맞는 모계중'고는 1947년 8월 관재 선생이 재단법인 모계학원, 모계초급중학교를 설립, 그해 10월 개교하고 이듬해 현 교사 부지에 돔식 2층 적벽돌 본관건물을 건축했다. 모계고는 1953년 4월 사립남자고로 개교했다.
그동안 모계중 1만3천 명, 모계고 8천500명의 졸업생이 각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 동문들은 "못살고 어려운 시기, 지역에 모교가 있어 중등교육을 받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며 "모계인은 만석 재산을 쾌척해 학교를 설립한 관재 선생에 대한 감사와 모교 사랑이 남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설립자의 육영사업 열정
모계중'고의 건학이념은 충효 정신이다. 교명 '모계'(慕溪)는 설립자 관재 선생의 선친 김용희 공의 호(號)이다. 이 호는 조선시대 무오사화 때 탁영 김일손 선생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때 탁영의 고향 이서면 서원리 앞 냇물이 3일 동안 혈류로 변하여 흘렀다는 자계(紫溪)를 사모(思慕)한다는 뜻이다. 김용희 공은 김일손 선생의 절의와 덕망, 학문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호를 모계라 지었다.
이처럼 관재 선생은 선친의 뜻을 받들어 육영사업에 열정을 다해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다. 그는 1947년 대구대학(현 영남대학) 설립 때에도 도서 3만 권을 구입할 수 있는 100만원을 기증했는데 이 돈은 당시 한우 200마리 값에 해당한다는 게 동창회 측의 설명이다.
박봉환(62'중15회) 총동창회장은 "설립자의 학교설립에 대한 감사와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총동창회 장학금 모금 확대와 2만여 동문들의 한마당 단합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명문고 발전에 힘 모아
剛(강'굳건하자), 愛(애'사랑하자), 創(창'창조하자)을 교훈으로 모계중'고는 2007년부터 남녀공학으로 환원하여 지역 명문고로 제2의 창학을 하게 됐다.
모계고는 특히 심화반 운영, 주말아카데미반 운영 등 사교육 끌어안기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학교와 동문의 교육 열의가 성과를 거두면서 청도와 인근 각지에서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교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사교육 없는 학교', 2011년 경북도교육청 '농산어촌 명품고'에 각각 선정되었으며, 2009년 일본 도우아(東亞)대학교에 이어 2010년 미국 유타대학과 입학추천 특례와 여름방학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국제감각을 키우는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다. 김정웅(60'중18회) 교장은 "학교의 건학이념인 충효 정신은 요즘 세계화시대에 필요한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총동창회의 모교 사랑
모계중'고 동창회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1954년 고향을 지키고 있던 류달선, 박대범, 김영수, 변수목, 장인규 등 중학교 1회 졸업생 중심으로 회비조로 쌀 2되(당시 대구하숙비 한 달분이 쌀 한 말)를 정하여 출범했다.
초대 김영수 회장, 2대 변수목 회장은 동창회를 구축했고, 3대 류달선 회장, 4대 홍석인 회장은 모교 장학금 기초 조성을, 5대 변수목 회장은 화재가 난 모교의 복구에 힘을 쏟았고, 9대 이종출 회장은 개교 50주년 기념사업, 기숙사 건립 지원, 시청각 교육시설 지원 등 모교 지원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총동창회 산하에 서울지구(회장 장석철'중16회), 부산지구(회장 박보영'중12회), 대구지구(회장 김한곤'중10회), 청도지구(회장 김석희'중16회) 등 4개 지구가 구성되어 있다. 총동창회는 매년 10월 정기총회를 열고, 각 지구 총회, 신년교례회, 등반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형수(55'중23회) 사무국장은 "청도지구는 지역 거주 동문들이 많아 끈끈한 정을 과시하며 자랑스러운 모계인으로 동문 가족체육대회 등을 통해 선후배들이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청도군의회 의장 이승율(중18회, 고16회) 동문은 중학교 2학년 때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제주도 수학여행(여행경비 현금 1천원, 쌀 2되)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총동창회 동문들은 연간 1천만원의 장학금을 후배 15명에게 지급하고 있다. 1983년 화재로 신축 본관건물이 전소하자 전 동문들이 성금을 모아 학교에 전달했고, 1989년 기숙사 건립 지원비로 이종출 9대 회장이 5천만원을 희사했다. 동문들은 개교 50주년 기념 설립자 동상 제막, 개교 60주년 기념 대형 교훈석 건립 등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모교사랑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 총동창회 측은 귀뚜라미 보일러 최진민(중7회) 회장의 모교발전 기금 5천만원 기탁, 김태열(중16회, 고14회), 김정웅(중18회), 김해묵(중25회), 26회 동기회, 이판대(중24회), 피문찬(중27회), 김태완(중29회, 고27회), 이규열(고30회), 박수복(중32회, 고30회) 동문 등이 모교 장학금과 학교발전기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학교를 빛낸 동문들
모계고는 법조계 인사와 군 장성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김상태(중1회) 전 자유중국대사와 이원동(중14회) 전 청도군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에 졸업생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월남전에서 부하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고 이인호(중1회) 소령이 모계중 출신이며, 정재식(중1회) 전 공군 준장, 이석윤(중1회) 전 육군 소장, 현 육군 군수사령관인 이상돈(중 21회, 고 19회) 중장 등 군 장성과 영관급 간부들이 많이 나왔다.
법조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김준곤(중22회), 부산 김정우(중23회), 김천 이인구(중24회), 대구 최창덕(중26회) 변호사와 박동진(중26회) 현 서울고검 검사, 강해운(중32회) 현 수원지검 부장검사, 서울 김태관(중40회, 고38회) 변호사, 대구 조래정(중41회, 고39회) 변호사 등이 있다.
학계에서는 전 제주교육대 성주현(중1회) 교수를 비롯한 동문들이 학문연구에 힘쓰고 있으며, 예술계에는 민병도(중20회, 고18회) 화가 겸 시조작가, 정진채(고2회) 아동문학가 등이 활동하고 있다. 재계에는 귀뚜라미보일러 TBC 대구방송 최진민(중7회) 회장, ㈜한국콘도 장영기(중9회, 고7회) 회장, 현대제철 부사장 홍성수(중24회) 동문을 비롯한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사진1=박봉환 총동창회장
사진2=2007년 개교 60주년 기념사업으로 교훈석을 건립할 당시에 동창회 간부와 학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3=지난해 12월 총동창회 정기총회에 각 지구 동문들이 모여 행사를 치르고 있다. (모계중'고 총동창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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