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하정우 대구 개인전
"그림을 그릴 때면 마치 식물이 된 기분이에요. 그림이 주는 기분 좋은 두통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요."
영화배우 하정우의 개인전이 31일까지 동원화랑에서 열린다. 이번에 선보이는 '피에로' 시리즈는 그가 지난해 영화 '황해'를 찍으면서 그린 작품으로, 다양한 배우들이 익명으로 혹은 상징으로 나타난다.
그림 속 피에로는 얼굴에 꿰맨 자국과 수많은 상처가 있다. 얼굴은 장난스럽지만 몸이 끈으로 묶여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자유롭고 화려한 풍경 뒤에 갇혀 있는 연예인의 뒷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500, 168, 49' 등의 숫자가 씌어진 그림도 있다. 이는 스타가 첫 번째 계약하는 상징적인 계약금 500만원과 168㎝에 46㎏이라는 완벽한 몸매에 대한 상징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베르나르 뷔페에 대한 오마주 작품도 눈에 띈다.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구도로 그려진 그의 그림은 관객들에게 명료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준다.
18일 화랑에서 만난 그는 화려한 영화배우가 아니라 영락없는 화가의 모습이었다. 그가 붓을 잡기 시작한 것은 7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저리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였어요.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실에서 집중할 곳이 필요했어요. 운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죠."
그는 무작정 스케치북과 연필, 수채화 물감을 샀다. 그림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지라 그저 낙서하는 수준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그림에 점차 빠져들었고, 피카소, 잭슨 폴록, 바스키아 등의 화집을 통해 그림을 배웠다. 사실 그의 아버지인 탤런트 김용건 씨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오치균, 박대성, 권순철 등 화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해왔다. 그림은 삶의 배경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화 '바스키아'를 만났다. "영화를 보며 그림이 이렇게 쉽고 거침없이 그릴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죠. 그때부터 내가 보는 사물을 제 식대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산발적이고도 다양한 시도는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도 쉬는 날이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모티브가 될 만한 사진 수백 장을 직접 찍어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와 그림은 무엇일까. "영화는 정교하게 의도된 이성적인 작업이지만, 화폭 안에서는 자유로워요. 영화와 그림이 서로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림은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큰 힘이 되는 작업입니다."
그는 '나에게 물려받은 탤런트가 쌀이라고 가정한다면, 나에게 영화는 쌀로 밥을 짓는 것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남은 밥을 가지고 술을 만드는 것이다'고 표현했다.
영화감독이자 현대미술가인 줄리앙 슈나벨, 영화배우이자 미술가인 안소니 퀸의 족적이 그에게 큰 힘이 된다.
"연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이해하는 그릇이 넓어질수록 그림에 담긴 깊이도 자연스럽게 깊어지겠죠? 그러길 희망합니다." 053)423-130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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