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자원봉사 횃불을 들자

입력 2011-03-18 11:08:00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미국에서 공부한 기간을 모두 합해 보니 무려 7년이나 된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학자로서의 미국 생활에서 내게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박사학위를 받았던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의 세계적인 의학 수준도 아니요, 2년간 연구년을 보냈던 하버드대학의 그 많고 많은 장서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인의 자원봉사이다. 미국의 위대한 힘은 자원봉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기간은 말할 것도 없고 1, 2년 미국에 체류하는 것으로는 미국의 이런 힘을 발견할 수 없다. 굳이 숫자로 따진다면, 자원봉사는 미국 경제의 약 30%를 떠받치고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다.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자원봉사가 사회적으로 정착되어 있긴 하지만, 미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런 점에서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결코 미국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자원봉사에 근거한 자선문화를 무시한 채로 지배와 통제 정치만이 앞선 중국은 선진국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한국현대사에서 대구는 1907년에 국채보상운동의 시민 정신을 우뚝 세운 자랑스러운 도시이다. 이 운동의 근본정신은 자원봉사이다. 이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인들은 IMF 외환위기에서 보았듯이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모금운동에 동참해왔다. 그런데 대구의 이런 불꽃 같은 자원봉사 정신은 20세기 후반부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는 양상이다. 기념공원이나 만들어달라고, 그리고 대구근대역사관에 유물이나 전시해달라고 이 운동의 선구자들이 자기희생과 헌신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대구경북이 이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에서 자원봉사 문화의 중심이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비록 일본은 지난 세기에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주었지만, 한국인들은 과거의 덫에 걸려 세계화시대 이웃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채보상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대구가 일본을 돕는 데도 제일 먼저 앞장서서 자원봉사의 횃불을 높이 들자. 이번에 파국적인 재난을 겪고 있는 센다이 지역은 대구와도 이미 교류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가장 자원봉사에 앞장선 지역은 어디인가. 서슴없이 대구경북이 제일 앞장서왔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대구가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선정되었을 때 다른 신청지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벨트와 같이 돈이 되는 사업에는 달려들면서 자원봉사는 왜 무조건 달려들지 않는가.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그냥 기념공원과 박물관의 유물과 전시품으로 전락했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자. 천년고도 경주가 그냥 단순한 관광도시 또는 위성도시로만 방치되는 동안, 대구경북은 경주의 불교문화 창달을 위한 자원봉사를 정착시키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밀양 신공항 청사진에서 경주는 어떤 문화공간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 또한 포스코가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기업으로 부상하는 동안 대구경북은 과학기술 문화의 발전을 위한 자원봉사를 사회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무엇을 했는가. 과학벨트를 지금에서야 하겠다고 추진하기 이전에 포스코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대구경북의 자원봉사 문화로 승화시키는 데 얼마나 절치부심했는가.

지금 전국은 지역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신공항과 과학벨트를 두고 지역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대구경북이 나아갈 길은 이런 판에서 이전투구할 것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아낌없는 자원봉사 운동을 펼침으로써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원봉사 문화를 앞서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대구경북의 이런 모습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이럴 때 신공항이든 과학벨트이든 정부의 지원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자원봉사가 사회화되어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때 대구경북은 한국 국민에게는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에게는 감동의 물결로 다가가는 지역문화의 꽃을 피우리라.

이종찬(아주대 교수·문화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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